[그 시절 우리는] 이삭줍기
[그 시절 우리는] 이삭줍기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5.10.17 2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상락 소설가
프랑스 사람 밀레가 그렸다는 <이삭 줍는 여인들(사람들)>이라는 그림을 언제 처음 봤는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아마도 중학 때 미술책에서, 아니면 교무실 벽면에 걸린 액자 속에서 처음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이나 복사본 말고 진짜 그림도 봤다. 70년대 중반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였는데, 그 전시회 이름이 ‘인상파 화가전’이었는지 ‘밀레 특별전’이었는지 그 또한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봤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니까 그림이야 물론 잘 그렸겠지만, 그림 속으로 초대된 풍경 자체는 소싯적에 이삭깨나 주워본 내가 보기엔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오늘, 다시 그 그림을 사진으로 본다. 세 여인이 줍고 있는 것은 밀 이삭이다. 추수를 마친 들녘에서 이삭을 줍는 모습은 그냥 생각 없이 구경하자면 매우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배경을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멀지 않은 들판 곳곳에 높다랗게 쌓아 올린 곡식 낟가리가 우뚝우뚝 솟아있다. 저 거대한 낟가리들의 주체 못할 풍요와, 이미 수확이 끝난 들판을 더듬어 떨어진 이삭을 찾아 허리를 굽히는 저 꾸부정한 빈곤….

당시 프랑스에서는 남의 밭에 들어가서 가을걷이 작업 중에 흘린 이삭을 줍는 그 일도, 동네 농업 관련 관청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었다고 하니 밀레의 사실화 속, 세 극빈층 여인의 남루가 저리도 적나라한데, 어찌 평화로운 들녘 풍경으로만 관상할 수 있겠는가.

보리나 밀 수확을 마치고 나면 주인은 자신의 논밭을 돌면서 여기 저기 떨어진 이삭들을 주웠다. 조(서속, 서숙)를 거둔 뒤에도, 가을철에 벼를 베어낸 뒤에도 어김없이 그렇게 했다. 그것은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이 안 든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아이들도 나가서 거들었다. 물론 그것도 이삭을 줍는 일이긴 했으나, 논밭의 주인이 자신의 들판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이삭을 마저 거두는 그 일은, 달리 말하면 추수를 마무리하는 2차 작업이라 할 만하다.

밀레 그림 속의 그것과 비견할 만한 진짜 ‘이삭줍기’는 그 다음에 이뤄진다. 곡식 낟알 한 톨이 새롭던 시절이었으므로 우리 같은 아이들도 바구니나 망태를 들고 메고, 우리 논밭뿐만 아니라 남의 집 전답까지 돌아다니며 이삭줍기를 했다. 하지만 이삭줍기에도 규칙이 있었다. 수확과정에서 미처 못 거둔 이삭을 주인이 일차로 돌면서 주워낸 다음에야 남이 들어가 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농사일을 꼼꼼하게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의 논밭은, 한 나절을 돌아다녀봤자 곡식모가지 몇 건지지 못한다. 우리 집의 경우 아부지가 농사일을 워낙 후다닥 해치우는 편이어서 엄니와 나의 1차 이삭줍기 작업이 매우 고단하였다.

어느 가을, 엄니와 아부지는 고구마 캐기를 막 끝낸 다음 날 외갓집에 일이 있어 집을 비웠다. 그런데 이웃집 만수 아저씨가 자기 각시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느그 밭에 감재(고구마)를 다 캤응께, 내가 들어가서 이삭을 조깐 줏워도 되는지 물어볼라고 왔듬만, 느그 엄니가 안 계시니께 다음에…”

나는 사립을 나가려는 만수 아저씨를 불러 세우고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감재밭에 가서 이삭 줏워도 돼요!.”

모처럼 가장 노릇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윗녘에서 온 만수 아저씨는 재석이네 집에서 5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다가 오두막집으로 제금 났는데, 자기 이름의 땅뙈기가 없어서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고구마 밭의 경우, 이삭을 줍기도 하지만 캐기도 하였다. 쟁기로 밭두둑을 깊게 간다고는 하지만 두둑이 아닌 고랑에도 고구마가 들어 있는 수가 있고, 쟁깃날에 반이 잘려서 나머지가 땅속에 묻혀 있기도 하였다. 오후에 밭으로 내려가 보니 만수 아저씨는 바지게로 두 짐은 넉넉히 될 만큼의 고구마를 한쪽에 쌓아놓고서 나를 보자 뒷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어 했다.

며칠 뒤, 엄니는 나를 데리고 문제의 그 고구마 밭으로 이삭줍기 행차에 나섰다.

“이상한 일이네. 금년에는 감재밭에 이삭이 토옹 안 뵉인단 말이여.”

“그것이야 뭐…감재 캘 때 내가 꼼꼼하게 다 뒤져서 잘 캤응께 그라제.”

엄니한테 조금 미안하였다. 다음 날, 엄니는 전답이 없는 만수 아저씨 네와 나눠먹어야 한다면서, 서숙 두 되와 고구마 한 자루를 그 집에 갖다 주라 하였다. 기분이 참 요상 야릇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