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점점 커지는 정보로부터의 소외

  • 입력 2015.10.17 22:06
  • 수정 2015.10.17 22:07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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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이곳 남해는 농지가 좁아서 농가당 경지면적이 육지의 절반 수준입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겨울날씨가 따뜻해서 월동농사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밭이든 논이든 이모작을 합니다. 하다 보니 봄에는 마늘수확과 모심기가 겹치고, 가을에는 나락 수확과 마늘파종, 시금치파종으로 전쟁을 치르다시피 합니다. 지금은 딱 그 막바지입니다. 그러니 요즘의 하루는 참으로 귀하디귀한 시간입니다. 그 중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날씨입니다. 윗지방은 가뭄이 극심하다던데 이곳은 모자람 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아니 추석 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집집마다 논을 말린다고 고생을 했습니다.

겨우 논을 말렸는가 싶은 며칠 전에 또 비예보가 있었습니다. 다들 비가 내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을 마치려고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습니다. 덜 마른 짚을 걷는가 하면 질퍽한 논을 쓸고 다니느라 사람도 트랙터도 생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TV의 일기예보와는 달리 핸드폰의 일기예보는 비가 없다고 했습니다. 해서 우리집은 거침없이 일을 해댔습니다. 논 이웃 어르신께서 비가 온다는데 타작을 하면 어쩌냐고 염려를 하셨습니다. 핸드폰의 지역 일기예보에는 비가 안 내린다고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겠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안도를 하시며 논을 하루 더 말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요새 젊은이들은 핸드폰으로 뭘 많이 듣는다면서 부러움 반 시샘 반 끝말을 흘리셨습니다.

맞습니다, 요새는 정보의 시대인지라 손 안에서 세상일을 다 훑으며 돈거래까지 하는 세상입지요. 편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편리함입니다. 핸드폰 화면 곳곳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거나 밀어서 접속하는데 이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헷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용어도 낯설고 복잡합니다. 간혹 나이든 분들 중에서도 기계조작에 관심이 많고 배움이 남달리 빠른 분들은 손쉽게 사용하시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어려워하십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분은 자랑삼아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스마트폰 조작을 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때 정보화교육이라며 면사무소에서 컴퓨터 교육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도 잠시이고 이젠 스마트폰으로 뭐든 하는 세상입니다. 컴퓨터 사용도 쉽지 않지만 스마트폰도 역시나 농민들에게는 좀 먼 이야기입니다. 젊은이들이야 신종 기기가 나오면 그것을 갖는 것이 능력인양 으시대지만 새벽부터 밤 되도록 뼈빠지게 일하는 농민들에게는 사치도 뭣도 아닌 그냥 남의 나라 일이나 한 가지입니다. 핸드폰 들여다보며 음악 듣고 영화보고 금융거래하며 뉴스 듣고 할 틈이 없습니다. 방법도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정보와 더욱 멀어집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는 이렇게 다가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값지게 살아가는 농민들이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개인의 문제라구요?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라한다면, 정책도 세금도 필요 없겠지요. 허나 세상은 엮여있고 주변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 좋은 것도 같이 나눠 쓰고 소문도 같이 듣고 비슷하게 알아갈 때 덜 소외받는 것인데 정보로부터의 소외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스마트폰맹이 문맹보다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농민들이 이러할진대 여성농민들은 더한 문제겠지요? 여성농민의 문제 대부분은 사실은 소외의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문제이지요. 정보화시대에 농민들의 소외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는 여성농민 문제와 같은 모양새인지라 언급을 해보는 것입니다.

음, 가능하다면 농민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료를 할인해서 보급을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면 농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되는 것 아니냐고요? 맞아요, 확실히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정보이용료는 너무 비싸요.) 또 농한기에는 찾아가는 스마트폰 교육으로 세상으로부터 덜 소외받도록 해야겠습니다. 스마트폰 그까이 것이 뭐라고? 그러게요, 아무것도 아닌데 그게 또 사람을 차별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네요. 일기예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실은 비예보가 있던 날, 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내기라도 했으면 건 만큼 잃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바쁜 일철에 덜 불안해 하며 가을일을 할 수 있었지요. TV에서는 온다는 비가 스마트폰에서는 안 온다했으니 적게 올 것이 뻔한 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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