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새마을운동과 국정교과서 그리고 농촌의 각성

  • 입력 2015.10.16 13:48
  • 수정 2015.10.16 13:52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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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종 서울대 교수

요즘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이 막강한 여권의 밀어붙이기로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러한 정부의 일방적 행위는 현 정권의 역사적 정당성 확보이자, 차기 총선과 대선을 고려한 정치적 문제제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어서 정치권도 이 문제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 왜곡의 국정교과서 강행이 담고 있는 반민주적이자 전체주의적 시각은 단지 교과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달 말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언급하면서 그 사업을 추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부각시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새마을운동 예찬에 대해 ‘산불처럼 새마을 운동 번져’라고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의 근현대 역사상 대표적인 전체주의적 행정 사례가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이다. 군사독재시절에 진행된 전형적인 관제 농촌운동으로, 수출 위주의 중공업 경제개발 추진으로 도시와의 빈부 격차가 심각해지고, 농촌 인구가 도시의 저임금 빈민노동자로 전락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청와대 주도로 1971년 공식출범한 새마을 운동은 ‘새마을노래’를 전국에 울리게 했고, 1971년 41억 원의 정부 지원금은 1979년에는 정부 지원금 4,252억원과 민간 지원금(?) 2,032억원이 투입되는 거국적 사업으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운동의 급격한 확대가 가능했던 것은 농촌 근대화와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현란한 구호 이면에 ‘새마을운동 농촌지도자 교육과 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독재정권의 통치이념을 농민 더 나아가 전 국민에게 심는 것에 또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출 위주의 경제논리 속 농촌 희생과 독재 통치이념의 강화라는 숨은 정권 의도는 결국 농민을 빙자해 전 국민을 우민화하는 과정이었다.

더욱이 절대 권력이 막대한 예산으로 주도하는 전국 운동이 늘 그렇듯이 새마을운동도 전형적인 비리 온상이었다. 새마을운동은 각종 관제 기구의 이권개입과 특혜, 공금 횡령 및 혈세 낭비라는 구조적 비리와 부패 문화를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게 한 대표적인 사업이 됐다.

불행히도 현재 이런 새마을운동이 정부 지원 속에 세계적인 농촌 개발의 모델로 포장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는 반기문씨의 호응에 힘입어 해외로 수출되고,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운다면서 방한하는 저개발국가의 지도자들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과거의 관제 운동을 무조건 옳다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 판단을 하는 편협한 평가는 불가능하지만, 현 정권 들어서 새마을운동 관련 지원 예산이 최근 2년간 30배 가까이 폭증한 규모로 편성된 사실로부터 이런 포장이 결코 순수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되돌아 보면 국정원 부정선거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2013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다시 한 번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키자”고 지시했고, 행정자치부의 ‘새마을운동 지원예산’은 2014년 약 5억원에서 2015년 57억원, 그리고 2016년도엔 대부분 새마을운동 홍보로 이뤄진 143억원으로 편성돼 있다.

이런 흐름을 보면 친일 행보를 지우면서 오히려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공공연하게 몰아가는 사회 권력층의 모습과 더불어 요즘 우리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이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현 정부의 과거 미화를 위한 국론 분열 상황에 즈음해서 우리사회에서 잘못된 권력이 끈질기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저변에는 역사 속에 희생되고 기만돼 온 농민들이 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더 이상 권력에 속지 않고, 깨어있는 농촌이 돼 농촌의 미래세대에 건강한 사회를 남겨줄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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