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고무신③] 댓돌 위에 신발들이 나란 나란히

  • 입력 2015.10.10 14:4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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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동네에서 가장 가깝고 널찍한 재만이네 논은, 벼를 베어낸 뒤부터는 아예 아이들의 놀이터다. 편을 갈라 자치기도 하고, ‘삼팔선 놀이’도 하고, ‘에스(S)’자 놀이도 했다. 뛰고 달리고 자빠지고 하다 보니 아차, 뒷산에서 성큼 땅거미가 내려온다.

“집에 가자.”

서둘러 고무신을 챙겨 신고 동무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한다. 이제야 와락, 걱정이 밀려온다. 조금만 놀고 해지기 전에 집에 와서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멍석을 젖혀 덮어라, 동생들 숙제를 봐주어라, 또 뭣 뭣을 하여라… 엄니의 이런 저런 당부에 건성으로 그러마고 대꾸하고 놀이터로 내달렸던 것인데 노는 데에 정신 팔았다가 집에 가려 하니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엉덩이가 서늘하여 만져보니 아침에 새로 입은 잠방이가 미어져 맨살이 감촉된다. 아, 이만하면 엄니의 지청구가 꽤나 걸판지게 생겼다. 오늘은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욱대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니는 그 부지깽이를 가지고 실제로 나를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립을 들어서서 조심조심 마당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아뿔싸, 토방에 어른의 흰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지금쯤 청주인지 충주인지 하는 곳에서, 우리 면(面) 경주이씨 익재공파의 족보 정리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아부지가 벌써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별로 큰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아부지의 고무신을 보는 순간 더럭 겁부터 나던 것이다. 나는 쉬 방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마당 한쪽에서 한참동안이나 자박거렸다.

토방이나 댓돌 위에 놓인 고무신만 보고도 그 집 식구들의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초가삼간의 토방에 아이들의 고무신이 대여섯 켤레씩이나 마구 흐트러져 있다면 호구조사를 따로 할 필요도 없이, 흥보네처럼 잔입이 주렁주렁 달린 빈한한 살림살이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마실 나온 사람이 이웃집에 갈 때에도 불쑥 들어가는 법은 없다. 일단 사립을 들어서서 토방에 놓인 신부터 살핀 뒤에 “집에 있능가?”라고 기척을 한다. 하지만 초저녁이라 할지라도 안방 문 앞 토방에 부부의 고무신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으면 걸음을 물려 사립을 나와 주어야 한다.

나란히 놓여 있는 남녀 고무신 두 켤레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못 살겠다고 뛰쳐나갔던 여인이 돌아와서, 어느 날 댓돌 위의 투박한 남편 고무신 옆에다 앙증맞은 꽃무늬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그 모습은, 생각 없이 사립을 들어섰던 이웃 사람이 보기에도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가 있었다. 마을 맨 끝집이었다. 그런데 그 ‘끝집 과부’가 전쟁 유복자 말고도 뒷날 또 한 명의 아들을 낳아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문제의 그 용남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놓고 철떡이니 개떡이니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런데 어느 날 빨래터를 지나다가 나는 어느 어멈네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랑께, 나는 그날 우리 동네에 소금 폴러 왔든 그 소금장수가 해거름에 웃말로 간 중만 알었제. 그란디 고것이 아녔어. 내가 그날 저녁 묵고 나서 비개 수를 놓겄다고 수틀을 갖고 그 집으로 안 갔겄는가. 아, 그란디 헛간 앞에 소금장수가 지고 왔든 그 지게가 떠억 받쳐져 있고, 토방에 거무튀튀한 남자 먹고무신 한 켤레가 기냥 따악 놓여 있드랑께. 그 끝집 과부의 꽃신 옆에 나란하게 말여. 아이고메, 가심이 떨려서 죽는 중 알었당께. 그때가 시월 달이었는디 용남이를 이듬해 팔월에 낳았응께 열 달 딱 맞다고 안.”

하지만 난 이후 용남이에게 빨래터에서 귀동냥했던 소금장수 얘기를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

고무신을 신다가 맛보는 가장 큰 낭패는 산 지 얼마 안 된 신이 찢어지는 경우다. 산에 나무하러 가거나 꼴 베러 갔다가 뾰족한 등걸을 잘 못 밟는 경우 코나 옆구리가 찢어지는 수가 있었다. 새로 산 고무신이 물푸레나무 등걸에 걸려 손가락 길이만큼이나 찢어져버렸을 때 생살이 찢기는 아픔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니의 반짇고리에서 대바늘을 찾아 고놈을 기웠다. 바늘 끝이 잘 안 들어갔으므로 기둥에다 바늘귀를 대고 낑낑대며 누르다가 부러뜨린 바늘만도 여럿이었다. 더는 신지 못 할 지경으로 너덜너덜해진 놈들은 엿장수가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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