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축제와 나그네

  • 입력 2015.10.10 14:41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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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이 바쁜 가을날,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틈에도 세상 사람들은 또 어찌 알고 또 각종 놀이를 잘도 만들어 놨습니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입니다. 봄축제가 주로 꽃잔치 라고 한다면 가을은 역시 열매의 잔치, 결실의 잔치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니 봄보다 훨씬 풍성한 지역축제들이 많습니다. 때마침 마을인근에서도 맥주축제가 있습니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하는 축제를 본 따서 남해의 독일마을에서도 축제를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맥주 마니아들이 절친한 벗들을 초청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노라면 더없이 재미있을 것을, 안타깝게도 일 년 중에서 가장 바쁜 농사철인지라 엄두를 못 내고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에 마음만 출렁입니다. 가을축제를 즐기는 것도 역시나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왜 하필 일하기 좋은 철에는 놀기도 좋을까요? 궁시렁 궁시렁.

그 와중에도 축제에 꼭 참석하는 이들이 있으니 누굴까요? 농촌에 사는 한가한 양민, 한량님들? 아니올시다. 농사일에서 손을 뗀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올시다. 가을일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그럼 누구? 바로 부녀회원들입니다. 이름도 좀 웃기지요? 부녀회의 회원이라니. 농촌의 여성농민들은 부녀로 불려 왔습니다. 부인과 여자라는 말이지요. 교사도 여교사가 있고 검사도 여검사가 있는데(물론 이런 분류도 맞지 않는 분류이지요. 남성 교사나 남성검사는 없고 교사나 검사라는 낱말 그 자체가 남성을 대표하니 이거야말로 남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시껄렁한 직업적 이름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바로 여성농민인 셈입니다. 농촌에 사는 부녀들 중 농사일을 하지 않고 사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농사일의 절반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그 역할에 맞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제대로 불리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여성농민들끼리는 스스로 무급종사자라고 합니다. 엄연히 근로하는 일꾼임에도 법적, 제도적, 정책적, 경제적 보장이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지요. 농산물 가격책정은 물론이고 확장해서 보면 보험적용, 교통사고 등의 보상에서 직업적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가정 내에서도 그럴진대 사회에서는 별다른 대접을 받겠습니까? 똑같습니다. 그 바쁜 봄가을 농사철에 축제나 지역행사가 있으면 여지없이 호출됩니다. 먹거리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이니 당연히 음식이 필요한 잔치에 부녀회원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안 간다 하면 되지 않냐, 바빠서 못 간다하면 되지 않냐굽쇼? 그러게요, 그럴 수 있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갑니다. 얼마나 그 책임을 완벽하게 하는지, 행사불참에 하루 일당에 준하는 벌금을 매기는 자체의 규약도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야말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여성들의 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주어진 일을 해내는 똑순이 언니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네 어머니들이, 할머니들이 그렇게 살아 왔듯 오늘을 사는 여성농민들도 지역에서 그렇게 역할 하는 것입니다.

지역의 크고 많은 축제나 행사가 그 자체로 보람이고 자발성에 기초한 모두의 축제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무엇이라도 손을 보태고 싶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행사진행을 돕는 사람, 안내를 하는 사람으로, 것도 아니라면 그냥 구경만 하는 참여라도 모두가 보람차고 즐기고 나누는 지역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겠지요. 가정 내에서 여성농민들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온갖가지 노동을 당연히 여기듯 사회에서도 여성농민의 노동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는 이제 그만 막을 내려야할텐데, 어째야 할까요? 축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데도 행사의 중요한 결정 참여에는 쏙 빠지고 뼈 빠지게 일만 하게 되는, 여성농민은 축제의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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