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38회

  • 입력 2015.10.10 14:29
  • 수정 2015.10.10 14:32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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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일로 선택의 청와대 행은 좌절되었다. 그리고 새삼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러 날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역시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연좌에 대해 절대 불만을 내색하지 말 것이며 하던 대로 정부 시책에 맞추어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 그리고 서둘러 공화당에 입당하기로 한 것이었다. 사실 그 무렵에 농촌 지역에도 공화당 당원을 배가시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생각보다 많은 농민들 표가 김대중에게 간 것을 보고 박정희는 화들짝 놀랐다고 했다. 소문으로는 어찌 농민들이 자신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분개했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 전에는 농민을 당원으로 가입시키는 일에 별반 나서지 않았던 지방 공화당에서 부쩍 당원 가입을 독려하고 있었다. 물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은 여전히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마을에서 글줄이나 읽었다든지, 감투를 쓰고 있다든지 하면 거개가 가입하는 실정이었다. 선택은 진즉에 가입대상이었고 그 역시 입당원서를 쓰려고 했는데 일이란 게 때로는 이유 없이 차일피일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때까지 가입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어, 형님이 아직도 당원이 아니었단 말씸이우?”

약방집의 철구에게 일부러 들러 입당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그는 몰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오래 전부터 약방을 하던 아버지 덕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철구는 면내에서 유일하게 정치 바람이 든 자였다. 전부터 용하다고 소문이 나 있던 약방은 타지에서도 약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무면허 침쟁이였던 그의 부친은 해방 후에 자격증까지 따서 정식으로 약방을 열었고 손님이 넘쳐나서 면내에서 현금이 제일 많다는 소문이었다. 외아들인 철구는 읍내의 농업고등학교를 나오긴 했지만 제 아비를 돕는다는 핑계로 하는 일 없이 노상 읍내 출입이나 하는 룸펜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제 어떻게 바람이 들었는지 지역 공화당 청년부장인가 뭔가 하는 명함을 파들고 다니기 시작한 지가 벌써 몇 해 전이었다.

“그러게 말여. 진즉 가입하려고 했는데 이리 되었네.”

손바닥만 한 면에서 그가 몰랐을 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당원 가입을 독려하고 다닌다던 그가 선택에게는 찾아온 적이 없었다.

“난 형님은 벌써 가입하신 줄 알았쥬. 근데 인제 이 짝으로도 좀 활동을 해보실려구요?”

어딘지 상대를 살피는 눈빛으로 말을 하는 철구를 보고서 선택은 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었다. 본래부터 성격은 괄괄하지만 속이 좁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선택이 잠재적인 제 경쟁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럴 마음도 없지만 이 시골구석에서 생뚱맞게 무슨 정치인이라도 된 것처럼 구는 게 황당했다.

“글쎄, 뭔 별다른 활동이야 있겄어? 우리겉은 농민도 나라에서 받아준다니께 가입을 하려는 거지.”

“아 참. 형님도. 형님이 무슨 농민이요? 우리 면에서, 아니 읍내를 통 털어도 형님만 한 지도자가 어디 그리 있슈? 신문에도 그렇게 나고 청와대까지 들어갈 뻔 했담서요?”

그 말에 선택은 움찔했다. 아직 청와대 행이 무산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자가 알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다 듣게 되었슈. 이게 별 거 아닌 자리 같은데 그래도 읍내에서 기관장이나 이런 사람들하고 어울리게 되니까 얻어 듣는 것도 꽤 있슈.”

철구가 변명하듯이 말을 하면서도 어딘지 고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선택을 경쟁자 비슷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선택은 정식으로 공화당 당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시곡마을은 우수마을로 선정되었다. 전 해에 나온 시멘트를 잘 활용한 전국의 마을 중에 절반 정도를 뽑아서 우수마을을 지정했고 다시 시멘트 오백 포대와 철근 1톤이 나왔다. 본격적인 새마을운동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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