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TPP 호들갑

  • 입력 2015.10.10 14:28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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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 한신대 교수
TPP가 타결됐다. 언젠가는 될 거라 본 까닭에, 나로서는 특별한 무엇은 없다. 하지만 수 년 동안 TPP를 추적해 온 나로서는 우리 언론의 호들갑에 아연실색, 할 말을 잃는다. 도무지 거두절미하고, 왜 우리는 없나, 이러다가 어찌되는 거 아닌가, 우리도 빨리 하자 그런 얘기가 주종이다. 대표적으로 <TV조선>의 반응을 보자.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이제 와서 부랴부랴 환태평양 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기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TPP 가입 문제는 한미 동맹의 향방을 가를 최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집권당의 정책위의장의 멘트는 “세계 경제전쟁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 열등감, 조급함, 불안, 경제 분석이 아니라 차라리 정신분석을 받아야 할 일 아닌가 싶다. 참으로 집단 힐링이 필요하다.

이런 어이없는 과장과 선동을 지켜보다 보니, TPP에 반대의견을 낸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정부 입장을 해명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언제 정부가 TPP 안 하겠다고 했나. 이미 벌써 ‘관심표명’을 했고, 이 말은 곧 언젠가는 한다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실기’는 맞다. 이미 2013년 상반기 저 유명한 한-미 FTA 협상대표였던 무역대표부 웬드 커틀러는 구질구질하고 속셈이 빤한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국의 TPP 참여를 사실상 종용했다. 그런데 바로 그 해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TPP 12개국 각료회의에서 “오직 지금의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만 새로운 참여국을 받을 것”을 결정했고, 미 무역대표부 또한 11월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의 TPP 관심표명을 환영하면서도 “현 회원국 간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 새로운 회원국의 가입을 고려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가입 전에 현재의 TPP 회원국과의 양자 협의를 마무리할 필요가 있음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정부는 어쩌면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일수도 있다. 참여하라 해서 한다고 하니, 끝난 뒤에 보자는 그런 거 말이다.

그 당시 TPP 공청회 석상에선가 산업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을 내가 기록한 것이 있다. “언젠가는 들어 가야한다. 지금은 좀 빠르지 않은가 하는 문제제기는 이해한다. 중간에 들어가면 많은 부담이 있다. 나중에 들어가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상품양허가 특히 문제다. 쇠고기 관세가 지금 30%인데, TPP가 발효되면 다시 해야 한다. 피해가지 못한다면 서두르는 게 낫지 않나. 국민이 반대하면 어쩔 수 없다.” 곧 지금 서둘러 참여하는 것이 나중에 ‘가입’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당시 정부는 위에서 본 미국과 TPP 회원국의 입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뒷북치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그 당시 정부는 언제 타결될 지도 모를 TPP보다는 한-중 FTA, RCEP 즉 아세안+6 FTA, 그리고 한-중-일 FTA를 선호했다. TPP란 게 사실 한-일 FTA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일본으로서는 일방적으로 ‘입장료’를 청구할 수 있는 TPP 프레임으로 한국을 끌어 들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반면 한국 정부로서는 이미 그리 높지 않은 수준에서 중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중국이 주도하는 RCEP같은 다자틀이나 한-중-일 FTA같은 복수 간 프레임이 유리하다. 아무리 한미동맹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이제 이 정도의 협상전략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리 보면 최소한의 합리성도 망각한 채, TPP에 못 끼었으니 큰일이라는 식의 대중선동이란 건 전형적인 소아병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경고해온 것처럼 ‘가입’ 밖에 없다. 그리고 애당초 좀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 관변 측 발표 자료에 따르면 TPP 미가입시 GDP -0.12%의 피해가 있을 거란다. 그래서 이를 금액으로 환산해 보니, 2014년 기준으로 연 약 1,400억~1,680억 정도다. 어떤가. 이 정도가 피해라면 엄청난가? 그런데 우리 경제규모는 그 보다 천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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