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어머니, 저녁에는 통닭 시켜 먹어요!

  • 입력 2015.09.25 10:47
  • 수정 2015.09.25 10:49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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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올해 날씨는 별스럽게도 지역 간의 차이가 큽니다. 가문 지역은 한없이 가물고 이곳은 또 쓸데없이 비가 잦습니다. 봄에도 그렇더니 가을까지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가을비가 내리는 통에 바깥일은 못하고 창고 안에서 마늘 종자를 손봅니다. 농촌에는 맑은 날에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가 오면 비오는 대로 할 일이 있습니다. 가을비가 차락차락 내리는데 손만 놀리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역시나 비가 내리면 뭐가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집니다.

언젠가 양돈협회 관계자분의 말씀이, 비가 내리면 신체 에너지가 떨어져서 칼로리 공급을 많이 해줘야 한답니다. 그러니 비오는 날 먹고 싶은 것은 청량한 과일보다는 비교적 열량이 높은 음식이라는 것이고 그 중에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것이 전이었으니 그로 하여 비오는 날에는 파전생각이 간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파전보다 열량이 높은 돼지고기 수육을 해먹으면 더 기분이 좋아진다며 권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생각으로 어머니께 슬쩍 통닭이 먹고 싶은데 어떠시냐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정색을 하십니다. 입이 하자는 대로 하다간 안 된다는 예의 그 말씀.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면 다소곳이 그대로 따르면 좋을 것을 철없는 며느리인 탓에 대거리를 합니다. 비가 내릴 때는 뭔가를 좀 먹어줘야 기분이 좋아진다는데요, 라며 말을 늘어뜨리는 것이지요. 당신께서는 그리 안 살아봤다고 하십니다. 암만요, 그러셨을 테지요. 여성의 욕망은 금기시 되던 시대를 사셨으니 그러고 싶어도 말 못하고 산 세월에 이젠 아예 그 생각이 굳고 몸에 익숙해진 것이겠지요.

어머니와 말씀을 나눌 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 상태에 따라 표현법이 다르고 마음쏠림에 따라 입장에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감정,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살아오셨다 보니 그러신 것 같습니다. 감정과 생각이 스스로의 욕구와 세상의 기준 속에서 헤매다가 표현이 그렇게 들쑥날쑥 되는 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세상의 기준을 중심으로 살아오셨으니 얼마나 스스로를 누르고 돌리고 참으며 살아 오셨겠습니까!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러실 것입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인심이 박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더한 고충이 따랐을 법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는 없는 병이 있다하니 그 이름이 ‘화병’이랍니다. 이 신경증은 참고 참아서 생기는 병인데 장님으로 삼년,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으로 시집살이를 참고 살라고 가르친 까닭이기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병인 것입니다. 어린 여성이 참아서만 생기는 가정의 평화라면 언젠가는 터질 일시적인 것이겠지요. 가족이라면 누구든지 입장과 감정이 존중받아야 할텐데도 말입니다.

내가 나이가 들면 어머니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러기도 힘들지 싶습니다. 주변사람들과 섞여 사는 지혜도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성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성만큼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한다면 세상이 급변해도 심경이 덜 복잡할 듯합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도 좀 줄어들 테고 말입니다. 나는 이만큼 참고 살았는데 너희들은 왜 그러냐는 원망감 대신 균형감이 잡히겠지요. 아, 그런데 자존감은 스스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 곁에서 존중하고 지지해줘야 된다 하지요. 농민 값이 똥값인 세상에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의 삶은 정말로 훌륭하다고 지지해도 가정 내에서 만으로는 어려운 숙제인 듯합니다. 세상과 함께 박자가 맞아야 할 일이지요.

어머니를 대할 때 나의 감정 또한 들쑥날쑥합니다. 고달픈 여성농민으로 살아왔던 그 세월을 생각노라면 당신이 내게 부리는 투정도 이해 못 할 것이 하나도 없지만 어머니의 태도에는 은근히 예전 세상 사람들처럼 며느리를 하대하는 습관이 있으니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야참으로 꼭 통닭을 함께 먹을 셈입니다. 스스로의 욕구에 조금은 다가서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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