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뛰어든 농활] 마굿간에서 농업을 말하다

  • 입력 2015.09.25 10:41
  • 수정 2015.09.25 10:4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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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기자들이 농촌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내용을 수기로 올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본지 권순창 기자가 지난 21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한 농촌형 승마장에서 말 축사를 청소하기 전 4년생 말 새벽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우리네 시골 축사에 사는 동물에는 소, 돼지, 닭, 오리 등이 있지만 아주 드물게는 말이라는 동물이 있다. 사슴 같은 몸매에 황소 같은 근육을 가졌고 키는 칠 척에 달하면서 범종 같은 우람한 발굽은 디딜 적마다 떠걱 떠걱 땅을 울린다.

말이 시골 축사에 드물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산업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비육마 산업은 제주 일부 지역에서 꼼지락거릴 뿐 산업기반이 전무한 상태며 정부가 선심 쓰듯 내 놓은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제도적·절차적 제약으로 농민들이 넘보기 힘든 영역이다. 먹지도, 타지도 못하면서 식량을 축내는 거대한 가축이 들어갈 축사는 농촌에 없다.

지난 21일 내가 찾아간 말 축사도 애시당초 승마장 영업은 포기하고 동호회 위주의 승마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한우 중개업을 하며 작은 축사를 운영하던 충남 천안의 전해인(47)씨는 7년 전부터 말 예닐곱 필을 기르고 있다. 말을 기르면서 보는 적자를 소를 통해 메우는 식이라 엄밀히 말해 ‘축산업’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축사 안에는 말이 있었고, 언젠가 우리 농민들이 생업으로서 말을 키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 번째 농활로 말을 선택했다.

▲ 난생 처음 경운기 운전대를 잡은 권순창 기자(왼쪽)가 전해인씨의 설명에 따라 경운기를 몰아 말 축사로 이동하고 있다.
아! 나는 드디어 경운기를 몰아 보았다! 아주 어릴적, 골격 좋던 동네 친구놈이 태연스레 경운기를 몰고 다니던 걸 선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나였건만, 전씨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경운기를 맡겼다. 흠칫 놀라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나이, 벌써 서른하나다.

남들 쉽게 거는 시동을 어렵사리 걸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헌데, 경운기를 발명한 사람은 나랑은 뭔가가 맞지 않는 모양이다. 대가리를 얼마나 꺾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내리막길에선 뭔가가 반대라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브레이크는 밟는 게 아니라 왜 손으로 땡기는 구조인건지. 1단 기어 제일 느린 속도로 고작 10미터 남짓 이동했는데 이마엔 땀이 한바가지요 얼굴엔 머쓱함이 한바가지다.

경운기를 끌고 온 이유는 똥을 치우기 위해서다. 방 한 칸에 한 마리가 들어가는 말은 소처럼 축사 바닥을 기계로 긁을 수 없어 나흘에 한 번씩 사람이 직접 똥을 치워 줘야 한다. 삽자루를 들고 서툰 삽질로 깔짚에 얽힌 똥을 퍼 경운기에 담는다.

어설프지만 할 만한 작업이다. 한 개 두개 방을 치우면서 보람도 있다. 헌데 문제는 세 번째 방에서 왔다. 색깔(?)의 진하기며 질척한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이전 두 개 방과는 비교도 안된다. 벌써 지칠 대로 지친 삽질이 더욱 무뎌진다. “이 방은 도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치우신 거에요?” 답답함과 원망이 섞인 질문에 “똑같이 치웠어요. 이놈이 워낙에 좀 많이 싸는 놈이에요”라니 어디 탓할 데도 없어졌다.

▲ 권순창 기자(오른쪽)와 전해인씨가 말의 배설물을 치우고 있다.

청소가 끝나고 운동을 시킬 시간이다. 오늘 나와 함께 할 녀석은 ‘새벽’이다. 방에 있는 녀석에게 손수 썰어 온 당근을 먹이며 살살 끌어낸다. 당근을 먹일 땐 손바닥에 놓아 먹여야 한다. 손가락으로 집어 먹이면 말이 손가락을 문단다. 머리칼이 쭈뼛하다. 고삐를 잡고 갈 때는 머리 옆에 서서 나란히 가야지, 뒤쳐져서 발굽에 발이라도 밟히면 발톱이 빠진단다. 쭈뼛쭈뼛쭈뼛하다.

나란히 서서 천천히 운동장을 걸어 돈다. 가만 보아하니 속눈썹은 소보다 짧지만 눈동자는 소만큼 크고 눈망울은 소보다 맑다. 원래 큰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사람이 올라타는 동물인 만큼 말은 어떤 동물보다 교감이 중요하다. “어디 가서 갑자기 다른 말을 타 보라 하면 곤란해요. 한 마리 한 마리 성격이 다 다른데, 오래 길러서 성격을 파악했으면 괜찮지만 뭘 좋아하고 성격이 어떤 지도 모르는 놈을 타자면 말도, 사람도 곤욕이죠.”

그래서, 두 번째 바퀴를 돌 적엔 새벽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마음이 통하면 언어가 없이도 대화가 가능하다. 새벽이의 나이는 네 살. 기품 있는 숙녀란다. 작년까지 다른 농장에 있다가 그곳 형편이 어려워져 이리로 옮겨오게 됐다. 라는 말을 새벽이한테 들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전씨에게서 들었다. 새벽이와 마음이 통하려면 아직 한참은 먼 것 같다.

▲ 권순창 기자가 축사 옆 운동장에서 새벽이를 운동시키고 있다.

걷기가 끝나고 나선, 고삐를 길게 잡고 중앙에 선다. 새벽이가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혼자 뛰면, 나는 “으랴!”, “워!” 하며 움직임을 조절한다. 말을 운동시키는 방법이며 조련하는 방법이기도 한 ‘조마 돌리기’다. “어디 말 타는 사람들한테 가서 ‘조마 돌려봤다’고 하면 그래도 좀 다르게 볼 거에요”라고 하니 오늘 값진 경험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이나 말이나 운동 후엔 샤워다. 새벽이를 세워놓고 호스로 샤워를 시킨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찬물을 발굽에서부터 다리, 배, 엉덩이, 등, 목 순으로 뿌려준다. 털이 짝 달라붙어 드러난 힘줄은 멋지기도 하며 물결에 살랑이는 갈깃머리는 예쁘기도 하니 정말이지 여러 가지 매력이 많은 동물이다.

말산업이 정부의 홍보대로 농촌의 새로운 소득원이 될 수 있다면, 저물어 가는 우리 농촌에 전혀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어디까지나 뜬 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애초에 말산업 육성 운운하면서 부채질이라도 안했으면 꿈이라도 안 꿨을 텐데….” 전씨의 불평을 다시 한 번 새겨들으며, 말이 농민 곁에서 농민과 함께 행복할 그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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