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기자들이 농촌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내용을 수기로 올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우리네 시골 축사에 사는 동물에는 소, 돼지, 닭, 오리 등이 있지만 아주 드물게는 말이라는 동물이 있다. 사슴 같은 몸매에 황소 같은 근육을 가졌고 키는 칠 척에 달하면서 범종 같은 우람한 발굽은 디딜 적마다 떠걱 떠걱 땅을 울린다.
말이 시골 축사에 드물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산업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비육마 산업은 제주 일부 지역에서 꼼지락거릴 뿐 산업기반이 전무한 상태며 정부가 선심 쓰듯 내 놓은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제도적·절차적 제약으로 농민들이 넘보기 힘든 영역이다. 먹지도, 타지도 못하면서 식량을 축내는 거대한 가축이 들어갈 축사는 농촌에 없다.
지난 21일 내가 찾아간 말 축사도 애시당초 승마장 영업은 포기하고 동호회 위주의 승마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한우 중개업을 하며 작은 축사를 운영하던 충남 천안의 전해인(47)씨는 7년 전부터 말 예닐곱 필을 기르고 있다. 말을 기르면서 보는 적자를 소를 통해 메우는 식이라 엄밀히 말해 ‘축산업’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축사 안에는 말이 있었고, 언젠가 우리 농민들이 생업으로서 말을 키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 번째 농활로 말을 선택했다.
아! 나는 드디어 경운기를 몰아 보았다! 아주 어릴적, 골격 좋던 동네 친구놈이 태연스레 경운기를 몰고 다니던 걸 선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나였건만, 전씨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경운기를 맡겼다. 흠칫 놀라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나이, 벌써 서른하나다.
남들 쉽게 거는 시동을 어렵사리 걸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헌데, 경운기를 발명한 사람은 나랑은 뭔가가 맞지 않는 모양이다. 대가리를 얼마나 꺾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내리막길에선 뭔가가 반대라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브레이크는 밟는 게 아니라 왜 손으로 땡기는 구조인건지. 1단 기어 제일 느린 속도로 고작 10미터 남짓 이동했는데 이마엔 땀이 한바가지요 얼굴엔 머쓱함이 한바가지다.
경운기를 끌고 온 이유는 똥을 치우기 위해서다. 방 한 칸에 한 마리가 들어가는 말은 소처럼 축사 바닥을 기계로 긁을 수 없어 나흘에 한 번씩 사람이 직접 똥을 치워 줘야 한다. 삽자루를 들고 서툰 삽질로 깔짚에 얽힌 똥을 퍼 경운기에 담는다.
어설프지만 할 만한 작업이다. 한 개 두개 방을 치우면서 보람도 있다. 헌데 문제는 세 번째 방에서 왔다. 색깔(?)의 진하기며 질척한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이전 두 개 방과는 비교도 안된다. 벌써 지칠 대로 지친 삽질이 더욱 무뎌진다. “이 방은 도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치우신 거에요?” 답답함과 원망이 섞인 질문에 “똑같이 치웠어요. 이놈이 워낙에 좀 많이 싸는 놈이에요”라니 어디 탓할 데도 없어졌다.
청소가 끝나고 운동을 시킬 시간이다. 오늘 나와 함께 할 녀석은 ‘새벽’이다. 방에 있는 녀석에게 손수 썰어 온 당근을 먹이며 살살 끌어낸다. 당근을 먹일 땐 손바닥에 놓아 먹여야 한다. 손가락으로 집어 먹이면 말이 손가락을 문단다. 머리칼이 쭈뼛하다. 고삐를 잡고 갈 때는 머리 옆에 서서 나란히 가야지, 뒤쳐져서 발굽에 발이라도 밟히면 발톱이 빠진단다. 쭈뼛쭈뼛쭈뼛하다.
나란히 서서 천천히 운동장을 걸어 돈다. 가만 보아하니 속눈썹은 소보다 짧지만 눈동자는 소만큼 크고 눈망울은 소보다 맑다. 원래 큰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사람이 올라타는 동물인 만큼 말은 어떤 동물보다 교감이 중요하다. “어디 가서 갑자기 다른 말을 타 보라 하면 곤란해요. 한 마리 한 마리 성격이 다 다른데, 오래 길러서 성격을 파악했으면 괜찮지만 뭘 좋아하고 성격이 어떤 지도 모르는 놈을 타자면 말도, 사람도 곤욕이죠.”
그래서, 두 번째 바퀴를 돌 적엔 새벽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마음이 통하면 언어가 없이도 대화가 가능하다. 새벽이의 나이는 네 살. 기품 있는 숙녀란다. 작년까지 다른 농장에 있다가 그곳 형편이 어려워져 이리로 옮겨오게 됐다. 라는 말을 새벽이한테 들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전씨에게서 들었다. 새벽이와 마음이 통하려면 아직 한참은 먼 것 같다.
걷기가 끝나고 나선, 고삐를 길게 잡고 중앙에 선다. 새벽이가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혼자 뛰면, 나는 “으랴!”, “워!” 하며 움직임을 조절한다. 말을 운동시키는 방법이며 조련하는 방법이기도 한 ‘조마 돌리기’다. “어디 말 타는 사람들한테 가서 ‘조마 돌려봤다’고 하면 그래도 좀 다르게 볼 거에요”라고 하니 오늘 값진 경험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이나 말이나 운동 후엔 샤워다. 새벽이를 세워놓고 호스로 샤워를 시킨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찬물을 발굽에서부터 다리, 배, 엉덩이, 등, 목 순으로 뿌려준다. 털이 짝 달라붙어 드러난 힘줄은 멋지기도 하며 물결에 살랑이는 갈깃머리는 예쁘기도 하니 정말이지 여러 가지 매력이 많은 동물이다.
말산업이 정부의 홍보대로 농촌의 새로운 소득원이 될 수 있다면, 저물어 가는 우리 농촌에 전혀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어디까지나 뜬 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애초에 말산업 육성 운운하면서 부채질이라도 안했으면 꿈이라도 안 꿨을 텐데….” 전씨의 불평을 다시 한 번 새겨들으며, 말이 농민 곁에서 농민과 함께 행복할 그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