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37회

  • 입력 2015.09.25 10:35
  • 수정 2015.09.25 10:3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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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농촌의 지도자라는 소개가 나오고 시곡리의 마을길 넓히기가 실린 후 선택은 다시 권순천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신문에 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일이었다. 어쩌면 청와대에 초청을 받을지 모른다는 거였다. 귀를 의심할만한 이야기였지만 평소 신중한 권순천의 말이었으므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형 이야기를 청와대에서 본 모양이오. 아직 날짜가 잡히지는 않았는데 전국의 농촌에서 젊은 지도자로 꼽히는 사람 오십 명 정도를 청와대로 초청할 계획을 잡고 있어요. 도 별로 숫자를 책정하는데 충청도에서는 정형을 추천하였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그렇게 될 거요.”

▲ 일러스트 박홍규

언뜻 그런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시골에 가거나 농촌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가게 될 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옆에서 전화하는 소리를 들은 조합의 직원들과 조합장들이 더 난리였다.

“글쎄, 제가 한 일도 없는데 진짜로 초청이 되겄어요? 아직 두고 봐야죠.”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직원들은 마치 제가 청와대에 가게 된 듯이 흥분해서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그러나 선택의 청와대 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서 별별 헛소문까지 퍼지고 있었다. 정부의 요직으로 가게 된다는 것부터 아예 청와대에 근무를 간다는 소문까지 읍내까지 소문이 돌고 있던 때에 경찰서장이 형사 하나를 데리고 선택을 찾아왔다. 그들을 보는 순간, 선택은 이들이 청와대 행을 알리러 온 것이라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꺼낸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날 사람은 경찰서에서 신원조회를 하는 거쯤이야 알고 있겠지요?” 평소 안면이 있던 서장은 그날따라 긴장한 눈빛으로 선택을 빤히 쳐다보는가 하면 옆에 앉은 삼촌에게도 심상치 않은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야 그렇겠지요.”

대답을 하면서도 선택은 아무런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부친 성함이 정대성, 맞지요?”

“그렇습니다만.”

그제야 언뜻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철도노조 활동을 한 건 알고 있지요?”

서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철도 일을 하신 건 알고 있지만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아버지는 주로 서울에 살았고 나는 어렸으니까.”

“선택 씨야 모를 수도 있지만 동생 되시는 정대환 씨죠? 형님이 전평에서 활동한 거 알고 있지요?”

서장이 옆에 앉은 삼촌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삼촌은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저도 잘 모릅지요. 저야 여기서 농사나 짓고 살았으니께. 글고 전평이란 건 또 무에요?”

“해방 후에 빨갱이들이 만든 노동자 단체 비슷한 거요. 하여간 그 일로 선택 씨가 신원조회에 걸렸어요. 그냥 노조원 정도면 넘어갈 수도 있는데 부친은 감옥살이까지 했단 말이요. 이건 꽤 큰 건이오.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무언가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선택은 잠시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난 군대도 갔다 왔고 그 전에는 아버지 문제가 걸릴 적이 없었는데요.”

“연좌제에 걸려 있어도 군대는 다 보낸 걸로 압니다. 이전에는 딱히 신원조회를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랬을 테고요. 하여튼 이번 청와대 방문 건은 무산된 걸로 아시오.”

억울한 건 둘째고 자신이 아버지의 죄에 대해 연좌제로 묶여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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