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원산지, 진짜 소비자 관심 1순위일까?

  • 입력 2015.09.25 10:34
  • 수정 2015.09.25 10:38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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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종종 언론에서 기사화하는 먹을거리에 관한 소비자 인식조사결과를 보면 원산지는 항상 1~2위다. 먹을거리에 관한 강의를 할 때 물어봐도 많은 분들이 원산지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럴까? 슬프게도 설문조사의 결과는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문의 앞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설문조사의 주체가 원하는 답을 유도하는 질문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육과정을 통틀어 대부분의 시간을 객관식에서 하나의 정답을 골라야 한다는 교육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설문조사란, 우리가 실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무엇이 정답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과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먹을거리 선택의 기준을 물어보는 질문이나 관심사를 물어보는 질문은 대부분 비슷하다. ‘당신은 식품을 고를 때 무엇을 중요시 합니까?’ 대충 이런 식이다. 그리고 그 아래 상표(또는 브랜드), 가격, 원산지, 유통기한, 원재료, 중량 등이 열거돼 있다. 이제 소비자는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 상표를 선택하자니 어쩐지 소위 ‘메이커’만 따지는 속물처럼 느껴진다. 가격이나 중량을 선택하자니 돈을 따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원산지를 선택하면 이것은 곧 국산을 찾는 사람으로 보이고 이는 곧 뭔가 국가 내지는 국내 농업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듯 하는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실제 상품을 고를 때 무엇을 봤는지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원산지를 선뜻 선택한다. 그렇게 소비자 관심의 1순위는 원산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실제 마트에 가서 상품이 진열돼 있는 모양새를 보라. 기업이 상품을 진열할 때는 항상 자신들의 상표가 가장 눈에 잘 띄게 진열한다. 기업 간에 서로 자리다툼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다음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가격이다. 단위당 가격이 싼 것을 고르는 것이 알뜰한(!) 소비자의 지혜인 것처럼 홍보한 것은 이미 90년대부터다. 신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전단지를 꼼꼼히 비교하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계산기를 들고 가라는 홍보를 넘어 이제 마트는 스스로 단위당 가격을 전부 붙여 놓았다.

문제는 원산지다. 원산지는 그 상품을 들어 뒤로 돌려 뒷면의 작은 글씨를 눈여겨 들여다보아야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원산지가 1순위라고?

사실 원산지가 1순위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원료농축수산물을 사는 경우에나 가능한 말이다. 그나마 그것이 국산을 찾을 것임을 곧장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가공식품이 밥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당에, 원산지가 1순위가 되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그렇게 많은 각종 장류가 주원료인 콩이 거의 모두 수입산 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잘 팔릴 리가 없다. 우리 소비자들은 국산 농축수산물을 원료로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제 이런 설문조사에서 우리는 ‘정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가 했던 행동을 되짚어 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정작 먹을거리를 고를 때 의외로 원산지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게 표시돼 있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만약 눈에 잘 띄게 표시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야 정부와 기업이 우리말을 듣는다.

우리 솔직해지자. 그래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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