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토종씨앗] 울타리 타고 쑥쑥, 작고 야무진 생명력 호랑이콩

  • 입력 2015.09.19 16:44
  • 수정 2015.09.19 16:45
  • 기자명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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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콩

▲ 박지은(충북 괴산군 불정면)
괴산에 들어온 지 3년차 신참내기로 남편, 17개월 딸, 강아지 네 마리와 살고 있다. 토종콩 농사도 짓고 공부도 한다. 종자의 중요성을 다룬 글을 봤을 때 ‘이건 내가 할 일’ 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대를 물려온 씨앗을 받아 들었을 때 그 뭉클함을 잊을 수가 없다. ‘피고 지고 또 피며 수대에 걸쳐 살아온 씨앗이라니. 생명이 유한한 ‘내 존재’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은 이런 씨앗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여농 토종사업단에서 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섰다. 덕분에 전국 곳곳을 다니며 농사짓는 언니들을 만나 토종씨앗 현장을 돌아볼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귀농 첫 해 언니들에게서 얻은 노란콩 1kg, 호랑이콩 1kg을 심어서 가을에 수확하고, 작년에는 지난 콩 수확량의 절반 정도와 쥐눈이콩을 더해 1,000여평으로 늘렸다.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부직포를 덮어서 풀을 잡아주었다. 관행콩을 심었던 자리에 똑같이 심어보니 수량이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양적으로 비교하자면 토종 호랑이콩은 설 자리가 없지만 그만의 독특한 향미가 있다. 관행콩에 비해 알이 작고 야무지며, 향이 진하지 않고 단맛이 강해 밤맛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콩이 텁텁하다고 즐겨 먹지 않는 사람들도 이 콩은 고소하고 담백해서 맛있다고 한다. 밤처럼 폭신하고 달달한 맛이 나서, 호랑이콩밥, 호랑이콩조림, 호랑이콩두유, 호랑이콩카레 등 다양하게 해 먹을 수 있다. 레시틴, 안토시아닌이 풍부해서 간 건강, 노화예방에도 좋다고 알려진 콩이지만, 밥상에서 사라지면 농사에서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랑이콩은 울타리를 타고 쑥쑥 자라서 울타리콩이라고도 불린다. 곳곳에 울타리를 세워주었지만, 나무, 옥수수대 등을 타고 어디서나 잘 자라며 풀과의 경쟁에서 녹록하게 뒤지지 않는 생명력이 자못 대견하다. 호랑이콩이 손에 손을 거쳐 퍼져나가고, 다양한 요리로 밥상에 오를 그 날을 위해 나로부터 시작된 우리 호랑이콩, 이제 수확 준비를 해야겠다. 신품종을 등록한 사람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간에도 종자는 여전히 인류 공동의 유산이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경남, 제주, 강원에서는 토종씨앗을 지원하는 조례가 제정되었고, 충남 홍성, 경기 안양에서 씨앗도서관이 개관했다. 토종콩 몇 가지를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괴산에서도 머지않아 우리 주민들의 손으로 만든 씨앗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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