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몸뻬바지’도 유행이 있는데 ‘평등명절’은 유행도 없나?

  • 입력 2015.09.19 16:41
  • 수정 2015.09.19 16:42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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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추석이 코앞입니다. 나락 수확과 동시에 마늘과 시금치 등 월동작물을 심어야 하니 추석명절은 말이 명절이지 명절답지 못한 지가 한참은 됐습니다. 추석에는 특집영화 한 편 정도는 봐 줘야 되는데 말입니다. 아니 되레 신경이 더 많이 쓰입니다. 집안 구석구석 청소며 제수음식 장만, 밑반찬 준비 등 신경쓸 것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농민들에게 추석의 의미는 충분히 있습니다. 농사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이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날씨 등 자연조건이 받쳐줘야 되므로 천지사물을 관장하는 천지신명님께, 또는 조상님의 은덕에 햇곡식으로 감사드리는 낮은 자세는 농민의 기본인 셈입니다. 잘 자란 벼는 물론이고 호박 한 덩이와 참깨 한 바가지도 자연과의 공존 때문이라는 것을 농사를 짓다보면 자연히 알게 되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 외에 다른 산업에 종사하다 보니 개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가장 우선인 바, 햇곡식으로 조상님께 감사하는 추석명절의 의미는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

어찌되었거나 퇴색되기는 했어도 추석명절에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전통이 아직은 살아 있으니 그 의미를 되새기며 명절을 맞습니다. 문제는 그 좋은 전통의 미덕을 살리는 일에 여성들의 헌신이 너무도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명절이 오기 전부터 말끔한 이부자리 장만이며 집안 구석구석 청소에, 가뜩이나 조리과정이 복잡한 한식을 종류별로 굽고 튀기고 무치고 찌는 제례음식은 기본이요, 명절 당일에는 집안 식구에 먼 친척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접대를 해야 하니 명절의 좋은 의미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롯이 부담만 떠안게 됩니다. 그러니 많은 여성들이 명절증후군이라 하여 명절이 다가오기 전부터 예기불안 또는 스트레스로 두통이나 복통 등 신경증 증상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스트레스를 겪는 것이 개별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 여성들의 문제라며 몇 년 전부터 ‘평등명절’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수음식 장만에도 남성들이 동참하고 손님접대도 같이 준비하는 문화가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아예 한 번은 친정에서 명절을 쇠고 한 번은 시댁에서 쇤다는 집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호텔에서 약식으로 명절제를 지내고 추석연휴는 아예 여행을 즐긴다는 집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농촌에서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합니다. 평등명절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인 셈이지요. 추석 때 누가 다녀갔고 무엇을 사왔더라 하는 것이 가장 자랑거리입니다. 세상에나, 일할 때 대충 입는 할머니들의 ‘몸뻬바지’도 유행이 있어서 무늬나 바지통, 옷감이 시대를 달리하는데 이 평등명절은 농촌에는 방탄벽이 쳐져 있는지 접근을 못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가사분담도 잘 하던 도시남성들도 시골집에만 오면 어른들 눈치를 보며 ‘예전 그대로’ 합니다. 어머니께서 남자가 부엌에 들어서는 것 싫어하신다느니, 제수음식은 볶음밥과 다르다는 둥 여전히 여성들에게 부담을 안깁니다.

어머니들께서 궂은 일을 마다않고 헌신적으로 명절을 맞이하는 것은 절대로 좋아서가 아닙니다. 어머니들도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헌신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불편함을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전통은 계승하여도 어려움은 분담하는 일, 이것이 전통문화를 더욱 빛내는 일일 것입니다. 좋은 의미의 명절이 누군가의 일방적 헌신으로 괴롭지 않도록 모두가 같이 참여하고 즐기며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들은 전 굽고 작은 아들은 설거지 하는 평등명절은 앞집옆집 흉이 아니라 자랑일지니 꽃무늬 ‘몸뻬바지’처럼 널리 유행되면 좋겠습니다. 아, 시아버지배 송편빚기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어떨까요? 상품은 영화표로 하고서 말입니다. 물론 시아버지께서 먼저 송편만들기 시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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