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36회

  • 입력 2015.09.18 13:08
  • 수정 2015.09.18 13:14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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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오만한 끼가 흐르던 기자는 떡 벌어지게 차린 점심상과 면장이 찔러준 봉투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나자 태도가 바뀌었다.

“사실 전국 아무 마을에나 가서 취재해도 되는데, 서울 근처 가까운 데서 해도 되고요. 권국장님이 굳이 부탁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신문에 한 번 실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청와대에서까지 각별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이니만큼 이런 기회는 평생 한 번 있을까말까지요.”
맥주잔을 쭉 비우며 기자가 생색을 내자 면장이 얼른 잔을 채웠다.

“모쪼록 잘 좀 써주십시오. 우리 면이야 충청도 산골이지만 그래도 전 면민이 한데 뭉쳐서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걸 강조해주시고요.”

▲ 일러스트 박홍규

시골 면장으로서는 이만한 기회도 없을 터였다. 그런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기자가 더 말을 보탰다.

“제가 사회부 기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대통령께서 우리 신문 사회면을 매일 챙겨보신다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본래 그 분이 농촌 이야기라면 더 각별하게 보시니까 당연히 눈에 띄실 겁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면장님한테 표창장이라도 한 장 내려올지. 하하하.”

“어이구, 언감생심 그렇게까지 바랄 수야 있겠습니까? 보아주시는 것만도 황송하옵지요.”

면장은 정말로 황송한지 두 손을 마주 비비기까지 했다.

선택도 기자의 말에 따라 양복 윗저고리를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사진을 찍었다. 농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였다. 물론 나중에 신문에 나온 사진에는 손톱만 하게 얼굴만 겨우 나왔지만 말이다. 그나마 잔뜩 황송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은 면장은 사진은커녕 괄호 속에 이름만 간신히 나왔다. 선택의 집에 앉아서 건성으로 취재해 간 깐으로 해서는 일주일 후에 나온 신문 기사는 사뭇 감동적이었다.

‘충청도의 낙후될 대로 낙후한 시곡부락은 이번에 정부에서 내려온 시멘트로 마을길을 닦고 빨래터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새롭게 살아보자는 결의가 넘치는 마을로 변모되었다. 오래 전부터 농촌을 살리겠다는 뜻을 품고 고향으로 내려온 정선택 이장을 중심으로 삼백 여 마을 주민들은 한 마음으로 뭉쳐서 전국에서 최단기간 내에 시멘트를 모두 사용하였다. 불과 십여 일만에 새롭게 변한 마을을 보며 주민들은……’

이어지는 기사는 선택을 농촌에 숨어있는 젊은 지도자라고 추켜세우고 역시 정부의 이번 정책을 대성공이라고 칭송하였다. 빨래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선택에게서 계획 중이라는 말만 듣고 이미 완성된 것으로 쓰고 있었다. 과연 기자라는 사람들이 뛰어난 필력을 가진 것은 알겠는데 아무리 보아도 거짓이 적잖게 섞여있는 기사를 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까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진즉 알고 있긴 했지만 세상인심이라는 게 희한했다. 신문에 기사가 나가고 나서 군수를 위시한 공무원들이 줄지어 드나들며 선택은 군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삼촌은 신문기사를 잘라서 큼직하게 액자로 만들어 대청마루에 걸었다. 낯 뜨거운 짓이라 말렸는데도 그것만큼은 어머니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조카님은 그런 말 말어. 이건 우리 집안 대대로 물려줄 가보여, 인자. 우리 군에서 어느 누가 이렇게 큰 신문에 떡 하니 사진까지 박혀서 나온 사람이 있는가?”

“그래. 나도 기쁘다. 작은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그냥 두어라.”

늘 어딘가 찌든 듯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어머니마저 그렇게 나오자 신문 액자는 마루에 앉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눈길이 가는 곳에 걸리게 되었다. 평소에 기쁘거나 슬픈 내색을 별로 하지 않는 선택의 부인도 꽤나 기꺼운 모양이었다.

“애 아부지가 보통 사람이 아닌 줄은 알었지만 서울에서까지 알아주는 사람인 줄은 나도 몰랐네유.”

빨래터에서 다른 아낙들에게 주워섬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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