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업] 대북 쌀 차관을 재개해야

  • 입력 2015.09.13 10:00
  • 수정 2016.07.25 21:17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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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전격적인 8·25 합의로 한반도 전체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고강도의 군사적 긴장이 대폭 완화됐다.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신호등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최근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기로 합의고, 그 장소를 금강산으로 결정하면서 금강산 관광까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과거 남북간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공존을 상징하던 협력사업 가운데 지금은 개성공단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관광이 재개된다면 상호 협력의 상징들이 하나씩 하나씩 복원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복원시켜야 할 또 하나의 상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대북 쌀 차관이다. 흔히 우리는 무상으로 쌀을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차관의 형식으로 쌀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쌀 차관은 북측에게는 쌀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남측에게는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기여했으며, (가칭)남북공동식량계획과 같이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의 식량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8·25 합의 이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과거 상호 협력의 상징들을 복원해 나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징이었던 대북 쌀 차관도 반드시 재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침 대북 쌀 차관을 재개해야 할 남측 내부의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 쌀값 폭락의 우려를 해소하고 쌀값을 안정시켜야 할 정책적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쌀농사가 연속 풍년을 기록하고 쌀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최근까지 쌀값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여기에 올해도 쌀농사가 풍작을 거둘 것이 유력해지고 쌀값 폭락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입할 의무도 없는 밥쌀마저도 수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쌀값 폭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쌀값을 폭락시킬 요인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쌀값을 안정시킬 방법은 사실상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북 쌀 차관 재개는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책수단이다. 잇따른 풍작과 밥쌀 수입으로 쌀의 공급 및 재고 과잉은 이미 기정사실화돼고, 쌀값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규모의 쌀을 시중에서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인데, 그 방법이 대량의 쌀을 해외 원조나 대북 쌀 차관으로 사용하는 것 밖에 없다.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가 아무리 변동 직접지불을 천문학적으로 지급하더라도 쌀 생산농민의 소득손실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변동 직접지불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쌀 생산농민의 소득손실도 그만큼 더 늘어나게 돼 있다. 현행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에서 쌀 생산농민의 소득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변동 직접지불이 가급적 지불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며, 지불되더라도 가장 적게 지불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쌀값 안정과 쌀 생산농민의 소득보전을 위해 지금 상황에서는 대북 쌀 차관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아마 이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08년 정부가 전격적으로 쌀 차관 제공을 중단하면서 당시 쌀값은 크게 폭락했고 쌀 생산농민이 천문학적인 소득손실 피해를 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쌀의 생산기반이 크게 축소되면서 2010〜2012년에는 쌀 자급률이 80%대로 추락하는 상황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남측의 쌀 자급기반 축소는 한반도 전체로 보면 민족의 식량주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이후에 쌀농사가 연속으로 풍년을 기록하면서 쌀 자급률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년 40만9,000톤의 의무수입물량과 쌀값 불안 때문에 적정 수준의 자급기반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측도 식량사정이 크게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식인 쌀은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민족 전체의 식량주권을 지금보다 더 높이기 위해서는 (가칭)남북공동식량계획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북 쌀 차관을 재개하는 것은 그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과거 대북 쌀 차관은 상호 협력 상징의 하나로 남북관계 개선의 윤활유 역할을 담당했었고, 북측의 쌀 부족문제 완화 및 남측의 쌀값 안정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식량자급 기반을 유지하는 선순환의 기능을 수행했었다. 이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잘 살려서 대북 쌀 차관을 재개함으로써 상호 협력의 효과를 다시 복원시켜내고, 나아가 민족 공동의 식량주권을 높이기 위한 더 높은 수준의 협력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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