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행복바우처’제도로 누리는 문화생활

  • 입력 2015.09.05 20:55
  • 수정 2015.09.05 21:00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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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얼마 전 그동안 몇 번이나 계획을 했지만 바쁜 농사일과 각종 회의로 인해 미뤘던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20년 전 농촌에 갓 들어와서 버섯농사 지을 때는 밤늦게까지 선별작업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 여성의 손이 많이 필요한 버섯농사를 잠시 접고 양파와 소를 키우면서부터는 가끔씩 재미있고 보고 싶은 영화가 나오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가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 영화 한편이 많은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축사에 먹이주고 대충 밥 챙겨먹고 서둘러서 영화만 보고 왔는데도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훨씬 넘겨버렸다. 인근지역인데도 영화만 한 편 보고 오는데 5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그래도 합천읍에는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생명의 숲이라는 공원과 갈마산 등산코스, 체육관, 수영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있어서 가족들끼리 산책도 하고 한여름 밤에는 영화상영, 예술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하지만 내가 사는 면지역은 마을이나 갑장계, 단체에서 1년에 한번 관광버스 타고 유람을 하고 오는 것이 유일하다. 평소에는 고된 농사일로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우리 어머니들이 관광버스만 탔다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몇 시간이고 그 좁은 공간에서 막 흔들어 댄다. 그런데 이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푸는데 가장 좋다나?

예전에 2009년 1월 개봉돼 관객을 울렸던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최 노인과 그가 부리는 나이 든 일소이다.

내가 갓 시집왔을 당시 우리 집에도 아버님이 부리는 일소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우리 지역에도 영화 상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빔과 이동식 스크린을 가지고 마을회관으로 찾아가는 영화 상영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마을회관에 모이시는 분들이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라 영화를 잘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상영하고 나니 모든 분들이 너무나 좋아하셨다. 내 평생 영화라는 걸 처음 봤다는 사람들이 80%를 넘었다. 어떤 언니는 20살 넘어서 시집와서는 20년이 지나도록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으로 영화를 봤다면서 다음번에는 꼭 영화관에 가서 한번 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 이후 6년이 지났는데도 딱 1번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관까지 가는 것도 힘들고 영화비보다 밥값, 간식값, 차비 등 다른 비용이 더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고개를 살레살레 흔든다.

얼마 전 충북에 사는 여성농민이 회의에 와서는 충북의 여성농민 행복바우처를 자랑했다. 여성농민들도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자부담 2만원으로 10만원 정도의 행복바우처 카드를 주는데, 여성농민들이 이 카드로 함께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하거나 나이 드신 분들은 병원에도 쓸 수 있는 카드라 여성농민들의 만족도나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또한 영화 보는 건 공짜지만 추가로 돈을 쓰니 지역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도시나 심지어 농촌지역 읍에만 나가도 여유롭게 행복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데 반해 농사짓고 면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여성농민들은 문화생활을 누릴 공간도 없지만 문화생활이 주는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사는 여성농민들이 많다.

문득 이런 물음이 든다. 현재 우리 여성농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도시에서는 시간 있고 돈 있으면 누릴 수 문화생활이 농촌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여성농민들은 행복할까? 꼭 뭘 줘서가 아니라 땅을 일구고 식량을 생산하는 여성농민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지역에서도 충북, 경기, 강원처럼 최소한 여성농민 행복바우처 제도라도 시행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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