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복숭아도 눈치껏 먹어야

  • 입력 2015.09.05 11:28
  • 수정 2015.09.05 11:29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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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일전에 친정 오라버니가 다녀가면서 탐스러운 복숭아를 사다주었습니다. 부농이 아닌 탓에 복숭아를 상자 단위로 사 놓고 먹을 만큼 여유가 넘치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시어머니 눈치가 보입니다. 찬거리로다가 큼직한 갈치를 산다던가 싱싱한 뽈래기를 살라치면, 물건이 좋다고 격려를 해주시지만 주전부리로 통닭이나 과일을 겁 없이 사노라면 말씀을 하십니다. 입이 하자는 대로 하고 살다가는 살림을 망친다며 아낄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지요.

왜 아니겠습니까? 자갈논밭을 일구어 자식들 키우시면서 얼마나 아끼고 아끼시어 살림을 꾸렸겠습니까? 그 마음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습니다. 게다가 각자가 딴 주머니 차면서 돈을 쓰는 것보다 서로의 지출을 공유하게 되면 낭비가 준다 하니 어머니의 말씀은 곧 생활의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해서 식사 후 온가족이 둘러앉은 때에 탐스런 복숭아를 나름 이쁘게 깎아서 접시에 담았습니다. 남편이 포크에 찍더니 제 입으로 가져갑니다. 깜짝 놀라 눈치를 하며 어머니부터 드려야 한다고 했더니 겸연쩍은 듯이 어머니께로 건넵니다.

마침 일일드라마에 심취하신 어머니께서 눈치를 채지 못하셨습니다만, 제 마음은 이미 상했습니다. 열심히 과일을 깎고 있는 저에게 권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연장자인 어머니께도 아닌, 무턱대고 본인의 입에 먼저 들어가도록 뇌에 입력된 저 생각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할까 싶은 것이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원인은 집안의 분위기입니다. 남편은 노할아버지 무릎에서 똥을 싸도 미움을 받지 아니하고 온가족들의 관심 속에서 자란 장손입니다. 가뜩이나 예민하지도 않은 성격에 주위의 기색을 살피는 감정노동은 애시당초 안중에 없었을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남자다움이 최고의 미덕인 집안 분위기에서 과일조각을 다른 사람 입에 넣어주는 것은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었을 터, 효와 불효의 개념도 뭣도 아닌, 그저 순하게 큰 남성일 따름입니다. 그런 그가 까닭도 모르게 아내에게서 눈치를 받게 되는, 오히려 뒤바뀐 현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운 결혼생활이겠지요. 문제를 제기하는 저보다 훨씬.

언젠가 인간관계훈련(사실 이런 게 필요하지도 않은 집단인데 말예요)한다고 여성농민들이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하시는 말씀의 첫 마디가, “제 남편은 장남입니다. 집안에서 얼마나 귀하게 자랐던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남편과 살자하니 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녔습니다”입니다. 문제는 그 분의 말씀에 거기에 있던 모든 여성농민분들이 끄덕이며 “그렇지, 얼마나 힘들었을꼬!” 하시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어디 장남만 그렇겠습니까? 귀하게 대접받고 자란 대부분의 남성들(그래서 더 남성에게 과도하게 짐지워지는 그 무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요)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여성농민들이 힘든 농사일을 해내면서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세상의 차별과 집안 내에서의 차별에 더 속상해 합니다. 저의 남편이 특별히 인격적으로 더 큰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단 여러 이웃들을 보면서 같이 느꼈던 문제인 바, 굳이 남편의 허물을 담아봅니다. 오늘은 아내를, 또는 가족을 먼저 챙겨보심이 어떨까요? 그러면서 넌지시 내가 어떻게 할 때가 제일 서운하더냐고 한 번 지긋이 물어보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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