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똥장군

  • 입력 2015.08.29 09:0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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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요즘이야 군대에서 그런 식의 ‘얼차려’를 시켰다간 지휘관이 인권 문제로 조사를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1970년대의 군대에서는 기상천외한 ‘기합’들이 많았다. 한여름 밤 점호 시간에 성질 고약한 주번사관이 뭣이 못 마땅했는지 갑자기 ‘빤바(빤스바람)’를 명한다. 연병장에 사방 일 미터 간격으로 늘어선 병사들에게 허수아비처럼 양손을 올리게 한 뒤 ‘동작 그만!’ 하란다. 굶주린 모기들이 날아와 온몸에 달라붙는다. 이른바 ‘모기회식’이라는 기합이다.

그래도 ‘모기회식’은 그저 괴롭기만 할 뿐이지만 아주 어이없는 기합도 있었다. 주로 여타 지휘관이 퇴근하고 없는 밤 시간에 당직사관에 의해 이뤄지는데, 이런 식이다.

“전달! 빤스 바람에 탄띠, 알철모, 왼발에 영내화 오른발에 통일화, 치약 들고 어깨총, 선착순 연병장에 집합!”

갑자기 내무반에 당직사관의 명령이 떨어진다. 팬티 바람에다 허리엔 탄띠를 차고, 양쪽 발에는 고무신 실내화와 훈련화 한 짝씩을 나눠 신고, 맨살인 어깨에는 소총을 울러 메고, 한쪽 손에 럭키치약을 들고, 머리엔 파이버를 뺀 알철모를 걸친…모습을 상상해보라. 그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 꼬락서니인지를, 앞뒤 혹은 옆에 서 있는 동료 병사를 보고서야 깨닫는다. 그런 모욕적인 기합을 받았음에도 총구를 거꾸로 향해 화풀이를 하는 병사는 없었다. 참말 다들 착했다.

훈련소에서 처음 철모를 지급받았을 때 난 갑자기 고향생각에 젖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군인들이 쓰던 미제 철모가 대거 흘러나와 시골집에서 흔하게 대할 수 있는 일상의 소품이 되었다. 군대에서 알철모라고 부르는 그 겉투구는 주로 좁쌀 등 곡식을 담는 용기로 쓰였다. 그보다는 그 안에 겹쳐 쓰게 돼 있는 파이버의 용도가 더욱 다양하였다.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가벼웠으므로 바가지 겸용으로도 사용했지만, 가운데에다 나무막대를 가로 대어서 우물물 긷는 두레박으로도 사용하였다.

하지만 군대에서 흘러나온 그 파이버의 용도는, 나무로 자루를 달아서 변소 간의 소매(본래 소마는 오줌을 뜻하지만 우리는 변소에서 퍼내는 똥오줌 물을 ‘소매’라고 통칭하였다)를 퍼내는 똥바가지일 때 빛이 났다. 비료 확보가 절실하던 시절, 가장 널리 쓰이던 거름은 변소에서 푹 삭은 소매와 퇴비였다. 아니 퇴비를 만들 때에도 보릿짚이나 꼴을 쌓으면서 켜켜이 소매를 뿌렸기 때문에 가가호호의 변소(칙간, 뒷간, 통시)야말로 농가의 비료공장이었다.

변소에서 소매를 퍼서 밭으로 내가기 위해 만든 용기가 바로 장군이었다. 보통은 소맷장군이라 하였지만 조금 비하하는 뜻을 담아 ‘똥장군’이라고도 불렀다. 그 시절 시골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넌 지게대학에나 가라”라는 말보다 더 모욕적인 말이 바로 “넌 똥장군이나 져라”였다. 아무리 ‘가갸 뒷자도 모르는’ 문맹자일지라도 그 소릴 들으면 누구나 무시당한 기분이었을 터이다. 요즘이야 머릿속에 논문 수십 편이 든 사람들도 줄줄이 귀농을 한다지만 그때야 농사짓는 일이 심히 천시되던 시절이었으므로.

지역에 따라 옹기점에서 항아리처럼 구워낸 장군을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나무를 덧대어 술통처럼 동여매어 만든 나무장군을 사용하였다. 변소에서 장군에다 소매를 퍼 담은 뒤에, 볏짚을 뭉뚱그려 장군 주둥이를 틀어막고, 지게에다 올려 지고서 밭으로 나가 똥바가지에 따라 담아 골골이 뿌렸다.

보리밭에다 뿌린 소매야 별문제 없이 좋은 거름이 되었겠지만 남새밭에다 준 소매거름은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남새(채소)에 닿지 않게 조심스레 준다고 하여도 소매를 주고난 뒤에 비가 오지 않은 경우, 그 밭에서 뜯은 상추나 배추를 먹고서 채독에 걸리기가 다반사였다. 그랬으니 뱃속에 온갖 기생충들이 서식하였고, 걸핏하면 횟배앓이를 하였겠지.

어느 날 초저녁에 변소에 갔다가 발을 잘 못 디뎌서 한쪽 다리가 무릎위쪽까지 빼져버린 적이 있었는데, 엄니는 날 씻어주면서 “칙간에 빠지면 커서 부자 된단다”, 그랬다. 그런데 왜 난 지금 부자가 아닐까? 아예 풍덩 빠져버릴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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