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33회

  • 입력 2015.08.28 13:17
  • 수정 2015.08.28 13:2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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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신고? 이 자식이 터진 입이라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글고 지금 늬가 한 얘기가 유언비어지, 별 게 유언비어냐? 진짜로 콩밥을 먹어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네.”

선택이 핏대를 올리자 석종도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택이 늬가 아무리 나하고 학교 동기라고 해도 호놈을 할 사이는 아닌데, 농협 주사도 벼슬이라고 땅 파 먹는 농민을 시퍼보는 것이냐?”

▲ 일러스트 박홍규

벼슬 어쩌고 하는 데에 꼭지가 돌아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내닫는 선택을 여럿이 달려들어 말렸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식식거리는 선택을 두고 석종이 휑하니 나가는 바람에 사태는 그쯤에서 진정이 되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마을에 들어온 시멘트 삼백 여 포대였다. 시곡리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마을에서도 어떻게 그것을 이용할지 몰라 우왕좌왕이어서 면 직원 모두가 매달렸고 농협에서는 선택이 마을 단위로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곡리에서 모범적으로 먼저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었다. 선택은 즉시 마을 회의를 부쳤다. 동계에 속한 주민들 칠십여 명이 성황당 아래 공터에 모여드니 마치 시장 바닥처럼 왁자지껄했다. 촌수 높은 정씨 어른들 몇몇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좌정을 하고 타성바지들은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좌중이 조용해지길 기다려 선택이 회의를 이끌었다. 물론 시멘트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특별히 주장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지금 정부에서도 그렇고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 우선 우리 마을 길을 포장하는 데 이 시멘트를 써야겠습니다. 온 마을 주민이 항상 이용하는 마을길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다는 건 모두들 아실 겁니다. 사실 우마차 한 대만 지나가도 사람이 비켜설 자리가 없으니 이번 참에 제대로 길을 내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저기서 무슨 말인지 모르게 씩둑거리는 참에 선택과 재종간이 되는 이 하나가 일어서더니 입을 열었다.

“길을 넓히는 것이야 누가 마다하겠나만 지금 마을길 옆이 죄다 논 아니면 밭이고 더러 대지도 있는데 길을 넓히자면 그 땅이 들어가야 할 것 아니여? 그럼 그 들어가는 땅값은 나라에서 주는감?”

예상 못한 질문은 아니었다. 오늘 회의를 위해서 면에서 나온 직원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미리 선택과 입을 맞추어 놓은 상태였다.

“지금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길을 넓히자면 당연히 길가의 땅이 들어가야겠지요. 또 누구나 이용하는 길에 누구네 땅은 들어가고 누구네 땅은 들어가지 않게 되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다 따지고 야박하게 땅값을 받자고 한다면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겠지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길로 들어가는 땅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이 들어가는 사람은 이삼십 평 정도고 대개는 열 평 미만이지 싶습니다. 그것을 나라에서 보상을 해달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마을 분들이 이용하는 길이니까 마을에서 잘 협의를 해서 추진하는 게 도리일 것입니다.”

연이어 선택이 말을 이었다.

“제가 대강 계산을 해보았더니 역시 제일 많이 들어가는 분은 저희 종가이신데 흔쾌히 땅을 기증하시겠다 했구요, 다른 분들은 방금 말씀 들었듯이 열 평 미만인 분들이 많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못 내놓겠다고 하면 길 넓히는 건 말짱 도루묵이 되는 판이니까 마을을 위해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장마 끝에 모기떼 같았다. 저마다 제 땅이 얼마나 들어가게 될지 분주하게 따져보는 모양이나 아직 상세한 계획도 나오지 않은 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거개가 면 직원과 선택이 이야기한대로 무상으로 희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중론이 모아지고 있었다. 물론 제 땅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얼마간 불만스러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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