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쟁기질

  • 입력 2015.08.23 11:1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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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편편황조(翩翩黃鳥) / 자웅상의(雌雄相依)…이렇게 시작되는 <황조가(黃鳥歌)>는 고구려의 제2대 유리왕이 지었다고 전해오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고대시가이다. 유리왕의 후실 중에 고구려 토착세력 출신의 화희(禾姬)와 한족 출신의 치희(雉姬)가 있었는데 유리왕이 사냥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두 여인네가 싸움질을 해서 결국 치희가 도망을 쳐버렸다. 부랴부랴 치희를 뒤쫓아 갔던 유리왕, 허탈한 마음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데 나무에서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지라 ‘훨훨 나는 저 꾀꼬리 / 암수 서로 정겹구나…’, 이렇게 읊었다는 것이다.

이 시를 두고 다양한 분석과 비평이 있지만 모두 각설하고, 「‘벼 화(禾)’자를 쓰는 화희가 ‘꿩 치(雉)’자를 쓰는 치희를 내친 것은 이 시기의 고구려에서 농경세력이 수렵세력을 구축한 것」 이라는 해석이 있어 흥미롭다. 농경이 본격화하면서 고대국가의 세력판도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뭐니 뭐니 해도 농업을 획기적으로 피어나게 만든 사건은 땅을 경작하는 데에 소를 이용한 것이었다.

우경(牛耕)은 곧 쟁기질이다. 경운기니 트랙터니 하는 기계화된 농기구가 생겨나기 이전까지 수 천 년 동안 논밭갈이의 수단은 쟁기였다. 따라서 옛 시절 농촌에 살았던 남자들 중에서 삽이나 괭이로 땅을 파본 것이 경험의 전부라면 그 사람은 어디 가서 “나도 왕년에 농사 지어봤다”고 어깨에 힘주어서는 아니 된다. 쟁기질을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초등학교 때 쟁기질을 해봤다. 고등학생이 쟁기를 잡아봤다 해도 안 믿을 터인데 초등학생이 쟁기질을? 하지만 사실이니 어쩌겠는가.

몹쓸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쓸 데 없이 어른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유난히 도드라졌다. 하지만 쟁기질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선 쟁기 한 틀을 지게로 지고 밭으로 내가야 하는데 어린 아이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또한 소가 있어야 하고, 갈아엎을 전답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소의 등 쪽으로 멍에를 올려서 걸고 아랫배 쪽을 둘러서 몸줄을 결박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어른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방법은 딱 하나, 아부지가 쟁기질을 하다가 잠시 쉬는 틈에 모험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부지의 쟁기질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고구마를 심기 위해서 보리를 막 베어낸 밭을 가는 작업이었다. 지켜보니 별 것 아니었다. 두 손으로 쟁기의 나무 손잡이를 나눠 잡되 오른손으로는 고삐와 손잡이를 함께 잡고 따라간다, 그러다 소가 멈추거나 방향을 잘 못 잡으면 고삐로 등을 치면서 이랴 자랴 하여 조정한다, 중간에 바윗돌을 만나면 보습이 부러질 염려가 있으므로 쟁기를 미리 최대한 옆으로 눕혀서 보습의 날이 바위를 타고 넘을 수 있게 한다, 밭 가장자리에 도달하면 쟁기 뒷부분을 불끈 들어서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그 ‘쟁기돌림’은 내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므로 밭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 시도를 하는 것이 좋다….

관찰이 끝났다. 마침 아부지가 담배를 피우려고, 소 앞에다 풀 한 깍지를 놓아두고는 라이터와 봉초를 놓아둔 들머리 밭둑으로 올라갔다. 이때다 싶었다. 나는 한참 먹고 있는 소꼴을 그러모아서는 옆으로 치워버렸다. 고삐를 잡고 돌아와서 쟁기를 잡았다.

“이랴!”

그런데 어어, 이 녀석 보게. 나를 만만하게 보았는지, 아니면 먹이를 뺏어버려서 심통이 났는지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꼼짝도 안 했다. 아부지가 들으면 안 될 터이므로 큰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화가 났다.

“네놈이 덩치가 암만 커도 내 나이가 훨씬 더 많은디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이랴!”

나는 고삐를 흔들어 소의 등짝을 철석, 갈겼다. 바로 그 때, 화가 난 암소가 돌발적으로 급발진을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 쟁기도 고삐도 다 놓친 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속력이 붙은 암소는 내친 김에 밭 가장자리 언덕으로 뛰어올랐고 그 바람에 쟁기가 허공으로 붕 떴다가 나동그라졌다. 아, 역시 첫 경험이란 참말 힘든 것이었다. 쟁기질도, 사랑도, 그 무엇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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