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32회

  • 입력 2015.08.21 13:31
  • 수정 2015.08.21 13:35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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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반 농민들이야 잘 모르기도 했지만 공무원이나 농촌에서 유지 노릇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박정희를 민족을 구원할 인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소문에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이후락이 박정희 대통령을 교주로 하는 박정희교를 신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도 하늘이 내려준 지도자라고 수군거리곤 했다. 선택도 노는 물이 그 가운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농촌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오랜 생각 때문이었는지 이미 박정희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지지를 하는 편이었다. 이번에 마을에 시멘트를 보내준 일만 해도 그랬다. 전국의 수만 개 마을에 그렇게 많은 시멘트를 내려줄 생각을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물론 삐딱하고 아는 체 잘 하는 명오리의 석종이가 한 말은 전혀 뜬소문일 것이었다. 그 일로 하마터면 선택과 큰 싸움이 날 뻔 했다. 그는 선택과 초등학교 동창이었지만 예전부터 뜨악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워낙 집안이 가난했던 석종은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말았지만 공부를 썩 잘한 편이라 늘 선택 다음으로 이등을 차지하던 친구였다. 딱히 멀리할 일은 없는데 석종이 곁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대로 시골에 눌러앉아 농사를 짓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격지심인지도 몰랐다.

무슨 일인가로 농협에 들른 석종이가 시멘트가 어쩌고저쩌고 할 때만 해도 부역하기 싫어하는 불평분자가 또 있구나, 했었다. 그런데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어서 하는 소리가 심히 놀라웠다. 게다가 농협 직원 서넛이 석종이를 둘러싸고 맞장구라도 치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지 않은가.

“요번에 전국에 내려 보낸 세멘똔가 뭔가가 무슨 속셈인 줄 아는가? 말로는 마을을 가꾸네 뭐네 하지만 우덜이 모르는 내막이 있는 거시여.”

그가 평소에도 농투성이답지 않게 아는 체하는 것을 아는 까닭에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나 싶어 선택 역시 귀를 기울였는데 다른 이들은 더 솔깃한 모양이었다.

“내막이 있다니, 무슨 말이여? 우리도 좀 알고나 있자고.”

“나도 속으로는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이상하긴 했어유. 대체 뭔 속셈이래유?”

저마다 침을 삼키는 꼴을 보며 석종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그 포대에 있는 그림이 뭐여? 용 새끼 두 마리가 있지 않은가? 고것이 그냥 그려놓은 게 아니고 쌍용이라는 회사 표시다, 이거여. 쌍용이라는 회사넌 당연히 시멘또를 맹그는 회사고. 근데 그 회사에서 시멘또를 맹글다가 먼 계산을 잘못했는지 재고가 엄청나게 쌓였다는 거여. 근데 또 그 회사 사장이 누구냐 하면 바로 박 대통령하고 아삼륙인 김성곤인가 하는 사람이라네. 그러니께 알조 아니여? 자기가 아넌 사람 회사 물건을 나랏돈으루다 사준 것이제.”

석종이 말을 마치며 째진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가르쳐 준 양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아, 그런 내막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다 사바사바가 있었겄지.”

거기까지 듣다가 선택은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석종에게 다가갔다.

“야, 석종이. 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늬 눈으루 본 것이여, 늬 귀로 들은 것이여?”

갑자기 터진 선택의 높은 목소리에 석종이 눈을 마주치더니 비웃듯이 입가가 일그러졌다.

“정 주사가 거기 앉아있는 줄 몰랐네. 근데 왜 갑자기 시비조여? 얌전히 이바구나 하는 사람한테.”

“말도 말 같은 걸 해야지. 지금 온 농촌이 한 번 잘 살아보자고 팔을 걷어 부치는 판에 힘을 보태진 못할망정 먼 망발이여? 아니, 유, 유, 유언비어지, 유언비어.”

선택이 더욱 흥분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반면에 석종은 유들유들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음기까지 머금고 있었다.

“유언비어라, 혹세무민하는 유언비어면 아예 경찰에 신고를 하지,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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