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과 밭이 야생동물의 놀이터 … 30분 만에 ‘초토화’

산세 험한 지역은 방지단도 무용지물
“농학·공학 결합한 야생동물 피해예방 연구센터 세워야”

  • 입력 2015.08.21 13:10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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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야생동물 피해를 입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북 김천의 김준호씨가 직접 개발한 번갯불퇴치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전빛이라 기자]

“여기가 완전 놀이터죠 놀이터. 먹고, 싸고, 뒹굴고 30분 만에 완전 초토화를 시켜놓고 가요. 빛에 반사되는 테이프를 붙이고, 와이어에 워낭을 달아 울려도 별 소용이 없어요. 허수아비는 15개까지 세워봤습니다. 그런데 까치나 멧돼지는 지능이 있어서 그것도 한 두 번이더라고요.”

그렇게 콩 농사를 망친 햇수만 2년. 경북 김천시 아포읍에서 콩 농사를 짓고 있는 김준호씨는 유해조수 피해를 입을 때마다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종기엔 새가, 수확기엔 고라니 등이 나타나 밭을 엉망을 만드는 통에 정상적인 수확이 어려웠다는 김씨. 답답한 마음에 직접 퇴치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력 대비 소득이 적은 콩 농사에 값비싼 퇴치기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파종기에 새가 한두 마리 날아오는데, 이때 콩을 맛본 새들에게 미각이 생긴다더라. 이 새들을 그냥 두면 최소 일주일 이내 30~50마리까지 불어나 날아온다”며 “보름이면 초토화된다. 나중에 콩 대신 잡초만 자라있는 밭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직접 제작한 예방 및 퇴치기를 사용한 이후로는 피해규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속적으로 깜빡이는 번갯불램프로 1차 야생동물의 침입을 예방하고, 2차로는 5~10분에 한 번씩 울리도록 설정한 벨로 이미 침입한 야생동물을 내쫓는다. 전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작동 가능하다.

5년 전 귀농한 공학도 출신의 김씨는 경광등과 벨을 결합한 유해동물 예방 및 퇴치기를 개발했다. 이를 찾는 농가들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사업자등록을 내고 직접 판매까지 나섰다.

김씨는 “실증시험도 굉장히 많이 했다. 하루에 20~30번 울리니까 새가 발길을 끊더라. 과수농가들이 많이 구입하고 있다”며 “버전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올해는 방수기능도 넣고, 민가나 축사 근처 농가를 위해 소리 조절 기능도 넣었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피해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 차원의 야생동물 피해예방 연구센터가 없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김씨는 “농학박사뿐 아니라, 농학박사와 공학박사가 함께 연구하는 유해동물 피해예방 연구센터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반사테이프와 워낭을 이용해서는 예방은커녕 퇴치도 어렵다. 전기울타리 같은 위험한 퇴치기를 사용하기 전에 예방을 위한 다양한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야생동물로 인한 농가 민원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 지자체차원의 뾰족한 대응책은 없는 실정이다. 김천시의 경우 지속적으로 월 50~60건의 관련 민원이 들어오고 있지만 지역 특성상 방지단 운영조차 쉽지 않다.

김천시청 환경관리과 관계자는 “하루 한 건 이상은 꼭 민원이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며 “그런데 김천지역은 산세가 험한 금호산과 연결 돼 있는 곳들이 많아 막상 방지단이 가 봐도 멧돼지 등을 잡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에서 보조금을 줘서 전기울타리 등을 설치하기도 하는데, 예산이 한정돼 있다 보니 1년에 혜택 받는 농가는 30~40농가뿐이다. 산과 인접해 있는 농가는 자력으로라도 울타리를 쳐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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