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삼시세끼, 오메 징한거

  • 입력 2015.08.16 10:34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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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따지고 보면 폭염이 기승을 부린 것은 한 열흘 남짓했는데도 그 더위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날 새기가 무섭게 기온이 오르고 선풍기도 샤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농촌에서는 정서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맞지 않다고 당초부터 가질 계획이 없던 에어컨도 상당히 유혹적이었습니다. 나는 더위 안탄다고, 정월대보름날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주위 사람들의 것을 사준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겨운데 매 끼니를 챙기는 것은 정말 고역일 수밖에요.

초여름 갓 열매 맺은 호박이나 오이, 가지 등의 채소들은 단맛이 나고 부드럽고 신선해서 맛나지만, 한여름 가뭄에 자란 것들은 질기고 쓴맛에다가 여름 내 먹은 탓에 지겹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하루는 생채로 또 다음엔 숙채로, 구이에 냉채까지 기억에 있는 모든 요리법들을 다 동원해서 찌지고 볶고 굽고 삶으며 삼복더위에 불 앞에 살았습니다.

새벽이나 해걸음의 그 짧은 시간을 틈타서 고추를 따거나 여름작물들 관리하면서도 어김없이 식사시간이면 불 앞에서 ‘맛난’ 식사를 준비하는 이것은 분명 천형인 게야,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 할 수는 없다고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때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삼시세끼’를 손수 해먹는 젊은 남자연예인들의 생활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삼시세끼 밥해먹는 중노동이 그들에게는 마치 놀이처럼 보입니다. 새로이 출연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요리기술에 놀라워하며 즐깁니다. 아, 도대체 이 차이는 뭘까? 똑같은 행위가 누구에게는 고역으로, 또 누구에게는 즐거움과 깨달음에 돈벌이까지 가능하다니 참 다른 세상이로구나.

텔레비전 속의 삼시세끼 준비는 마당 한가운데 화덕을 설치해 놓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또 카메라를 통해 전 국민의 시청 속에서 진행됩니다. 일부의 연출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격이 생깁니다. 반면 우리네 부엌은 대단히 사적인 공간입니다. 전통적으로 부엌은 집안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해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노동이 공유되지 않습니다. 다른 가족들도 함께 요리에 동참하여 어려움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오롯이 그곳의 책임을 맡은 사람, 즉 아내 혹은 엄마의 몫이 돼버리고 다른 가족들은 결과물만 공유합니다. 그것도 짜다, 싱겁다 등의 품평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밥이 질다며 도구 친다고 삽을 가져 오라시던 친정아버지의 역정도 기억납니다. 아마도 집집마다 밥맛을, 또는 밥 준비 시간을 핑계로 밥상을 엎은 어른들의 전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관습은 꽤 오래도록 남아서 오늘날 밝고 넓고 삐까뻔쩍 씽크대에서도 전승되고 있나 봅니다.

그 무더위에서의 삼시세끼 준비가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잊은 채, 당연히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고합니다. 만인은 법과 밥 앞에 평등할지니 밥 준비도 그리 하시라!

삼시세끼는 요리 기술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이며 관계의 문제인 바, 그 준비의 중차대함을 공유하라! 밥상 위에 수저를 놓는 것으로 함께 식사준비를 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불앞에서 직접 서시도록!

아직 늦더위가 남았습니다. 여전히 불 앞에서 서는 것은 고역인데 우리는 삼시세끼를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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