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31회

  • 입력 2015.08.16 10:09
  • 수정 2015.08.16 10:14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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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시멘트라는 것이 말입니다. 이렇게 밀가루처럼 보여도 물하고 만나믄 아주 돌뎅이가 되는 물건입니다.”

선택이 설명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귀를 세우고 듣고 있었다. 시곡 마을 어디에도 아직 시멘트로 지은 건물은 없었다. 면 소재지나 읍내에서 간혹 볼 수 있는 ‘브로꾸’라는 게 시멘트로 만든 물건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께 요놈을 우째 우리 마을에 이렇게 쏟아놓고 갔느냐, 이 말이여. 이걸 우짜라고?”

▲ 일러스트 박홍규

선택은 아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시멘트가 내려올 것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기에 책을 찾아보고 안 내용이었다.

“이 시멘트에다가 모래를 섞고 물을 부으면 반죽이 된단 말입니다. 그 반죽을 아무데나 발라놓고 며칠 기다리면 그놈이 굳어서 돌덩이같이 단단해집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동네 들어오는 앞길이 해토머리만 되면 진창이 되어서 발이 푹푹 빠지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이걸 반죽해서 깔아놓으면 다시는 진창이 될 일이 없지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선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회의를 부쳐서 결정을 해야겄지만 제 생각에는 우선 들어오는 마을길을 포장하고, 또 마을에서 여러 집이 공동으로 쓰는 우물가도 이것으로 정비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고도 남으면 지금이 물이 마른 때니까 애들이 학교 다닐 때 건너는 개울에 다리를 놓는 것도 좋지요.”

“아따, 결국 온 동네가 나서서 부역을 해야 한다는 말이구만. 내 일도 바쁜데 젠장.”

어느 마을에나 불평불만을 가진 자들은 있었다. 하긴 마을 사람들은 여러 부역에 동원되는 게 사실이었다. 수로를 고치거나 마을길을 정비하는 거야 당연하고 마을과 상관없는 신작로를 정비하고 풀을 베는 일에도 동원되었다.

“네에미, 신작로에 차 몰고 다니는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가 이 길을 닦아야 하냐고? 난 골전 물고 말 테여.”

신작로를 정비할 때마다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는 자들이 있었다. 주로 젊은 축에서 그러는데 선택으로서도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면장이 핏대를 올려 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면장은 불만을 가진 이들에게

“아, 일 년에 몇 번씩은 다들 버스 타고 이 길로 안 다니는 감? 글고 전국 방방곡곡에 뚫린 신작로를 어떻게 나라에서 다 관리하냔 말여? 하루 이틀 나와서 제 동네 앞길만 하면 되는 걸 가지고 불만을 하면 고것이 국민된 도리가 아니지. 불평불만 가진 자가 곧 불순분자여.”

하곤 했다. 불순분자 운운하는 말은 옮기지 않았지만 선택 역시 그런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은 이미 누가 보나 관과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면장이나 공무원들이 부쩍 핏대를 올리게 된 것은 그 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놀라서였다. 압도적으로 박정희를 지지하는 표가 나올 것이라 믿었는데 의외로 김대중을 지지하는 표가 많이 나왔던 것이다. 거의 반반이 나왔다고 했다. 그것은 선택으로서도 의외였다. 자신은 물론 박정희를 찍었지만 나중에 젊은 축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김대중을 지지한 자들이 상당수가 있었다.

“아니 느그들이 김대중을 알기나 허냐? 멀 안다고 아무 데나 표를 눌러주었다냐? 지금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농촌을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를 몰라들?”

이야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그렇게 말이 나가기도 했다. 좀 너무 했다싶어 속으로 아차,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택을 잘 따르던 후배 하나가 볼멘소리를 했다.

“형님 많이 변했수. 전에는 누가 봐도 야당을 지지하는 것 같더니 이젠 아예 공무원 티를 내는구만요. 솔직히 난 야당이 한 번 잡아서 바뀌었으면 좋겄수. 잘은 몰라도 정부에서 말만 많았지, 우리가 나아진 게 뭐가 있수?”

선택이 보았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이는 무지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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