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토종씨앗] 토종씨앗 지킴이, 시외할매를 소개합니다

  • 입력 2015.08.09 11:20
  • 수정 2015.08.09 11:21
  • 기자명 김명희ㅣ경남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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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고성군 마암면 김명희씨의 시외할머니인 이두선 할머니는 90이 넘은 연세에도 20여종 작물로 텃밭을 가꾸며 토종씨앗을 지켜가고 있다.
경남 고성군 마암면 두호마을, 이두선(91) 할머니. 우리 동네에 사는 시외할매다. 시외할매는 걸을 때 허리가 90도로 굽어서 그렇지, 아직 자기관리나 텃밭농사를 짓는데서는 흐트러짐 없이 짱짱하시다. 반찬 해 드시는거나, 집 청소 해놓는 거는 젊은 손주 며느리보다 훨씬 깔끔해서 오히려 우리집에 와서 한 번씩 빨래라도 개 주고 가시고, 나물거리를 다듬어서 갖다 주신다. 그리고 잘 정돈된 할매집 허드렛방에는 할매가 야무지게 말려서 봉지 봉지 싸놓은 씨앗도 있다. 상추, 도라지, 취나물, 호박, 물외, 겨울초, 6월본디, 가을본디, 선비콩, 쥐눈이콩, 팥, 대파, 쪽파, 부추, 시금치, 들깨까지. 연세가 많고 혼자 짓는 농사라 크지 않은 텃밭이지만, 가짓수는 20여 가지가 되겠다.

할매텃밭에는 종류에 따라 심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 줄이 많이 나가는 호박은 비탈받이에, 또 줄이 많이 나가고 열매가 매달려 있을 공간이 필요한 물외는 둑가에, 줄이 나가고 수확이 늦은 팥이나 본디종류도 밭가에, 취나물, 머위는 여러해살이니 비탈받이 중심자리에, 도라지, 부추는 뿌리가 잘 내려가야 되니 밭 제일 한가운데, 대파, 시금치, 상추, 겨울초, 배추 등은 자주 먹는 채소니 밭 입구에,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방아, 들깨는 밭 자투리에 심어 놓았다.

연세가 90이 넘었지만, 할매는 거의 매일 텃밭에 가신다. 오줌을 모아서 비료로 주고 재를 모아서 부추 베고 뿌려주고, 날마다 풀 메고, 그러니 할매 텃밭은 이것저것 심어놓은 것 마다 본때가 있고 어우러짐이 있다. 그리고 할매농사는 철이 지났다고 빼버리는 것이 아니고 꼭 씨를 받고나야 끝이 난다. 씨를 받아서 잘 말려서 봉지 봉지 싸놓는다. 시집에 들어와서 농사를 같이 지은 지 4년 됐는데, 어머니가 아파서 채소 같은 것은 내가 씨를 뿌려야 되는데, 그 때마다 할매가 씨를 가져다 주니 할매 씨앗에 관심이 생겼다.

동네 아지매들은 종묘사에서 상추, 시금치, 취나물, 부추 등 씨를 사서 쓰던데 이런 씨를 뿌려도 잘 될까? 그런데 할매씨로 뿌린 시금치, 겨울초도 괜찮았다. 대신 상추는 겨울, 봄철이 아니고는 꽃대가 너무 빨리 올라와서 별로였다. 내가 할매 씨 중에 제일 좋아하는 씨는 물외씨다, 여기와서 처음 먹어봤는데, 길쭉하지 않고 볼통하게 생겨 맛도 달큰한 것이 줄을 타고 나갈 데만 있으면 어디에 심어놔도 잘 됐다. 초여름에 끝나는 오이와는 다르게 가을까지 딸 수도 있고. 토종씨앗이 이런 거면 계속 심어야 되겠는데 마음 먹어 본다.

할매는 고 김덕윤 전여농 회장의 어머니다. 어머니하고 같이 여농활동을 하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할매, 어머니, 나 이렇게 3대의 농사이야기를 누가 인터뷰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가셨으니 이제 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맏딸이라서 할매를 극진히 보살폈는데. 어머니는 명이 짧고 할매는 명이 길어서 이렇게 된 거겠지만, 할매가 건강하셔서 텃밭을 자기 힘으로 가꾸고 토종씨앗도 많이 물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면을 빌어 어머니 가시는 길에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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