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의정부여자중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생경한 광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운동장 한 켠에 한창 이삭을 키워 가는 작은 논 마지기가 있고, 두둑 너머로 여느 학교라면 등나무 그늘 벤치가 있을법한 곳에 당근, 깨, 상추, 감자… 오밀조밀 텃밭이 자리잡고 있다.
의정부여중은 혁신학교 교육과정으로 생태교과를 운영하고 있다. 반마다 논밭을 할당해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데, 종종 찾아와 텃밭을 돌보는 졸업생들도 있을 만큼 학생들의 참여가 좋다.
4일 오전 무렵 한 무리의 학생들이 텃밭을 찾았다. 방학 기간이지만 당번제로 간간이 밭을 관리하는 모양. 방학 동안 자란 것은 풀이요 늘어난 것은 벌레다. “헐! 어떻게 들어가? 벌레 무서워!” 짐짓 엄살을 떨지만 이내 밭으로 들어가 능숙한 솜씨로 물을 주고 풀을 뽑는다.
“원래 이렇게 잘 자랐었나?”, “예림이가 심은 게 잘 자랐네.” 밭을 돌보는 농부의 모습 속에 “너무 거칠게 뿌리지 마! 물 튄다고!” 옥신각신하는 여중생의 모습도 있다. 비록 봉사활동 시간 인정이라는 불순(?)한 목적으로 출석했다지만 적어도 해맑은 웃음기만은 떠나지 않는다.
어쩐지 손길이 능숙하다 싶더니 대부분이 3학년 학생들. “1학년 때 우리 반 텃밭은 완전 망했어요. 처음이라 관리도 잘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거든요. 지금요? 아무래도 3년 동안 ‘조금은’ 노하우가 쌓였죠.” 자신에 찬 표정만큼은 이미 충분히 농민이다. 작업을 마치고 깻잎이며 당근을 한 아귀씩 뽑아들고 가는 귀가길 또한 농민의 마음일 터다.
굳이 혁신학교가 아니라도 소소하게 텃밭 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는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경기 시흥 응곡중학교는 학교 건물 옥상 화단에 흙을 보충해 작지 않은 규모의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일 응곡중 텃밭 동아리 학생들은 학교에 모여 배추 씨앗을 파종했다. 육묘틀에 흙을 눌러담고 씨를 뿌린 뒤 보드라운 흙을 덮는다. 방학 중에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찬가지로 불평 하나 없는 모습이다.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워내는 것이, 농민들에겐 일상이지만 도시 학생들에겐 값진 경험이 되고 소중한 추억이 된다. “작물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해요”, “수확량도 많고 맛도 좋은 감자가 제일 키우는 보람이 있어요”라며 소감을 말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오늘 일은 그나마 그늘에서 하니 수월해요. 한여름 뙤약볕에서 밭일을 하자면 죽을 것 같아요”라며 농민들의 고충에 공감하는 학생도 있다.
파종이 끝난 육묘틀은 물을 주고 싹을 틔운 다음 개학한 뒤에 밭에 옮겨심는다. 이 씨가 자라 배추가 되고 학교 급식에 등장할 때면 텃밭 동아리 학생들은 또 한 번 떵떵거리며 친구들에게 생색을 낼 것이다.
작업이 끝난 뒤 홀로 빗자루를 잡고 묵묵히 바닥에 흩어진 흙을 쓸어 모으는 남학생이 있다. “농사 일은 재밌어도, 청소 하기는 귀찮지 않아요?” 기자가 슬쩍 다가가 말을 건넨다. 그러자, 소년 농부의 의젓한 한 마디가 2년차 농업전문 기자의 낯을 뜨겁게 만든다. “힘들기로 치면 농사가 더 힘들죠. 청소는 한 번 치우면 끝이지만, 농사는 1년 내내 가꾸고 키워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