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미래’ 지키는 씨앗도서관

토종씨앗 지키고 우리 농업 소중함 깨달아

  • 입력 2015.08.07 13:18
  • 수정 2015.11.22 20:56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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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 안양씨앗도서관을 방문한 어린이가 체험용으로 마련된 토종씨앗을 만져보고 있다.
토종씨앗 빌려주는 도서관 = 씨앗을 빌려 주는 곳이 있다. 텃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소식이다. 보유한 씨앗만도 200여종이니 텃밭에 심기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이 많은 종자가 일반 종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처음 접해봤을 ‘토종 종자’만 빌려준다. 씨앗 값은 씨앗을 빌려서 키운 작물에서 다시 씨앗을 받아 돌려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씨앗도서관’ 이야기다. 지난 2월 충남 홍성에서 씨앗도서관이 개관한 이후로 전국에서 도시농업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토종씨앗도서관 만들기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안양시에서 전국에서 2번째로 씨앗도서관이 개관했다. 안양어린이도서관에 자리 잡은 씨앗도서관은 토종씨앗과 관련 책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한편에는 아이들이 직접 씨앗을 만져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옥상텃밭도 연계해 아이들의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도시농업이 활발한 경기 수원시도 토종씨앗 보존활동에 힘쓰는 민간단체인 ‘씨드림’을 중심으로 토종씨앗 도서관 조성 움직임이 분주하다. 도서관의 물리적 형태는 갖추지 못했지만 토종씨앗을 받기 원하는 도시농부들에겐 이미 4년 간 모종 형태로 토종 작물을 제공해오고 있다. 수원시 기후변화 체험관 안에 자리 잡을 예정인 씨앗도서관은 오는 22일 개관식을 앞두고 있다.

도시농부가 씨앗지킴이로 = 씨앗도서관은 시민들에게 토종씨앗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토종씨앗의 확산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도시농부들이 씨앗도서관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토종씨앗을 보존하는 역할엔 농업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도시농부들이 안성맞춤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대량 생산을 하는 전업농들은 토종씨앗으로 대량 생산과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상품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영재 씨드림 운영위원장은 토종작물이 시골에서 ‘도시농업적’ 방식으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토종씨앗을 보존해 온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길러왔고, 입맛에 베여 있고 자기가 키워왔던 씨앗을 버릴 수 없으니까 보존 차원에서 씨앗을 텃밭에 키워왔다”며 “이는 대량생산하는 전업농의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생산의 도시농업방식”이라고 말했다.

전경희 안양도시농업연구회 부회장은 도시농부가 토종씨앗을 길러내면서 갖는 다양한 효과들을 설명했다. “도시농부가 농사짓는 것은 판매가 목적이 아니다. 내 손으로 직접 길러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고, 농사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성 있는 수입종자에 의존하다보면 생물종다양성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며 “종자 주권을 지키는 데도 내 몫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농업의 미래는 도시농업에 달려 있다 = 씨앗도서관은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단계라 앞으로 빌려준 씨앗들로 채종에 성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반납한 종자라도 종자들 간 교잡이 발생할 가능성이 흔해 종자의 순수성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안양씨앗도서관과 수원씨앗도서관은 도시농부들을 상대로 토종종자 심는 방법, 채종법 등에 관한 교육을 도서관 활성화와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단 하나라도 증식에 성공해서 나눔을 할 수 있다면 그 시작이 중요한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다.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안양은 도시농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지역이다. 수요는 넘치지만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도시의 공간 확보가 시급하다.

씨앗도서관을 유치한 박문국 안양어린이도서관 관장은 “안양시청에는 농업 전용 담당이 없다. 농업기술센터도 없어서 도시농업에 대한 지원이 약하다. 민간단체들은 활성화 돼 있지만 정책은 못 따라오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전경희 부회장도 “수원과 같이 인근 지역 기술센터에서 하는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도 지역민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단 통보를 받는다”고 정책적 부족함에 아쉬움을 전했다.

소비자가 도시농업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도시농업과 기존의 농업이 상생구조로 갈 수 있단 이야기다. 전 부회장은 “토종씨앗이 보존되려면 토종씨앗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야 하고, 그러려면 먹거리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며 “먹거리를 지키지 않으면 농업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전했다.

씨앗도서관이 이 같은 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체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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