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누구를 위한 밥쌀용 쌀 수입인가

  • 입력 2015.08.07 13:10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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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부의 지난 5월 쌀 관련 발표자료 중에서 발췌한 문구이다. 그 중 하나는 ‘쌀 7만7,000톤 추가격리 낙찰 완료. 2014년산 쌀 총 24만톤 격리로 쌀 시장 안정 기대.’ 또 다른 하나는 ‘4월까지 가공용 17만9,907톤 구매 완료, 5월 6만8,840톤(밥쌀용 1만톤 포함) 입찰 추진중’이다.

정부의 이 두 가지 문구를 살펴보면, 일단 첫 번째는 정부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매입에 나섰으며 이로 인해 국내 쌀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한 내용이고 두 번째는 정부는 5월 경에 WTO 협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할 쌀 시장접근물량 중 1만톤의 물량에 대해서는 용도를 밥쌀용으로 정하여 수입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발표문을 액면 그대로 보면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설명하고 있는 ‘시장접근물량’을 설정한 배경만 보더라도 정부의 두 번째 발표인 발쌀용 쌀 수입 정책은 상식적으로 납득 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행한 ‘국영무역 사업안내’ 제일 첫 장에는 WTO가 출범함에 따라 수입농산물의 국내 시장교란 및 국내 농가 피해가 우려되므로 중요 농산물에 대해서는 ‘시장접근물량’을 설정하여 일정물량 만큼 저율관세로 수입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수입 관리함으로써 수입농산물의 국내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 고시 ‘농축산물 시장접근물량 양허관세 추천 및 수입관리요령(관리요령)’ 제4조에 따르면 시장접근물량의 사용용도는 크게 일반내수용, 외화획득용원료, 외화획득용제품으로 구분하여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나 정부는 국내시장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일반내수용의 사용용도를 더욱 세분하여 표기할 수 있다고 돼있다.

정리하자면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농산물에 대한 ‘시장접근물량’을 적용하는 것은 농가피해를 최소화 하고 나아가 국내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쌀의 경우에도 당연히 위와 같은 정부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쌀 관세화를 하면서 시장접근물량 등 밥쌀용 쌀 30% 의무수입 조항을 없앤 상황이다.

결국, 현재 국내 쌀 가격이 폭락하고 있어 이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쌀 매수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스스로 농가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쌀을 수입한다고 하면 당연히 밥쌀용 쌀이 아니라 가공용 등 다른 사용용도로 수입하는 것이 ‘시장접근물량’의 운영 취지에 딱 맞다. 최소한 지금시점에는 굳이 밥쌀용 쌀을 수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않을 경우 WTO 일반원칙 중 GATT 제3조 제4항 내국민대우 원칙과 제17조 제1항(b) 국영무역에서 상업적 고려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WTO에서 정한 시장접근물량 양허표나 농업에 관한 협정 어디에도 사용용도별 시장접근물량이 표시되거나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시장접근물량 양허표 중 쌀, 보리, 고구마, 옥수수 등이 개별적으로 별도의 세부항목으로 다시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각 세부항목에 대한 시장접근물량이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고 쌀 또는 보리 등 전체품목에 대한 시장접근물량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하물며 농산물의 품종 내지 용도에 따른 시장접근물량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자신의 수입계획에 따라 WTO에서 정한 각 농산물에 대한 시장접근물량 만큼만 수입하면 그만이지 그 수입물품을 품종별·용도별로 적당히 수입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정부는 자기 계획에 따라 시장접근물량으로 수입한 후 해당 농산물을 판매할 때 정부가 주장하는 WTO 일반원칙인 내국민대우 원칙 등을 위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쌀 산업은 단지 농산물 중 하나가 아니라 식량주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다. 현재 이러한 쌀 산업이 수급의 불균형으로 정부의 개입을 통해 안정시켜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몰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정부가 굳이 밥쌀용 쌀을 수입한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일단 소비자인 일반국민과 생산자인 농민을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오로지 나만의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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