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29회
[소설] 제3장 어떤 세월 29회
  • 최용탁 소설가
  • 승인 2015.07.25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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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박홍규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선택은 서른 살이 되었고 둘째 아들도 태어났다. 첫째 이후로 이년이나 태기가 없어 괴이하게 생각하던 터에 들어선 둘째였기에 꽤나 각별했다. 그 사이에 삼촌도 둘을 더 낳아 집안에는 밤낮으로 아이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닌데 삼촌은 어느새 집안의 농사일을 다 추스르는 일꾼 비스름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손에 가진 장애로 삼촌은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조금 모자라는 숙모 역시 마을 사람들과 별반 어울리는 일이 없었다. 그 사이에 논밭 여섯 마지기를 더 마련하여 양식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게 모두 삼촌과 숙모 덕분이었다. 본래 몸이 약한 어머니도 집안일에만 손을 거들뿐 농사는 거의 두 사람에게 맡겨놓은 형국이었다. 선택의 아내는 주로 아이들을 돌보고 빨래며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도 몸이 바빴다. 선택이 가끔 들에 나갈라치면 삼촌이 먼저 손사래를 쳤다.

“뭐, 일이 많다고 애비까지 나서? 붓대 잡는 사람이 호미자루 잡아서 쓰나.”

고향농산도 점점 자리를 잡아서 읍내에 번듯한 가게를 내고 서울을 오가는 운전기사도 따로 두었다. 마을은 여전히 끼니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가난했고 달리 나아질 기미도 없었지만 선택네만은 그야말로 유복하다싶을 정도로 만사형통이었다. 선택은 왠지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게 옳지 않게 느껴졌지만 그에게 찾아온 행운과도 같은 상황을 잃어버리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다만 무언가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새록새록 피어났다. 아직 한창 때였다.

그 즈음 정부에서 발표한 게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이라는 것이었다. 그를 위한 기구로 이미 농어촌개발공사가 발족되었고 본격적으로 농민들에게 지시가 내려온 것은 1969년 어름이었다. 주로 잠업과 비닐하우스 채소, 버섯, 과수 등이 장려되었다. 그 때는 농촌이라도 과일 맛보기가 꿈에 떡 맛보기처럼 드물었다. 산에서 자연적으로 나는 돌배나 개복숭아 정도, 아니면 우물가의 앵두나 살구에 여름철 참외도 누구나 먹었던 건 아니었다. 선택은 서울로 가서 들은 교육과 지역의 특성을 파악한 후 지역의 특별 사업으로 사과를 중심으로 한 과수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수원 조성 사업은 농민들의 반발과 무관심으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몇 땅을 많이 가진 지주들은 관심을 보였고 실제로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지만 한 해 농사지어 한 해를 살아야 하는 영세한 농민들이 묘목을 심고 보통 칠, 팔 년을 기다려야 수확을 하는 사과나무를 심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단기간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업으로 산동면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것은 양잠이었다. 누에치기는 해방 전에 한 때 꽤 여러 집이 하던 적이 있었는데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었다. 물론 그것은 주 수요층인 일본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누에고치는 대부분 일본으로 팔려갔는데 그 간 일본과의 교류가 단절되다시피 하며 양잠업 역시 쇠퇴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한일 국교정상화로 다시 교류가 많아지며 수출길이 열린 것이었다.

누에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한 한 번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고소득 작물이었다. 다만 누에의 먹이인 뽕잎을 얻기 위해 많은 면적의 뽕밭이 필요했다. 일본에서 들여온 개량종 뽕나무는 잎이 크고 빨리 자랐으며 하천가나 산 아래 묵정밭에서도 잘 자랐다. 처음 몇 가구가 누에를 쳐서 목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자 곧이어 산의 싸리나무가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누에를 키우려면 싸리나무나 대나무 따위를 엮어 잠박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은 누구보다 열심히 누에치기를 독려하고 다녔지만 정작 자신의 집에서는 하지 않았다. 농촌 사람으로 벌레 따위를 무서워 할 리는 없는데 이상하게 누에를 집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 또한 양잠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돈이 아쉽지 않은 저간의 사정 때문이었겠는데, 삼촌 내외는 몹시 아쉬워했다. 선택과 반대로 숙모는 남의 집의 누에까지 일부러 구경을 다닐 만큼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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