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집 보기, 참 힘들었어
[그 시절 우리는] 집 보기, 참 힘들었어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5.07.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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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일 한 가지를 들라면… 백인백색의 답이 나올 것이다. 개개인이 종사하는 일이 제가끔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따분한 일이라고 하여 그것이 모든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따분한 것은 결코 아닐 터이다. 마크 트웨인인지 뭣인지 하는 서양 작가의 동화에서처럼 ‘울타리 색칠하기’가 누구(톰 소여)에게는 따분한 노역이지만 그가 끌어들인 친구들에게는 신나는 놀잇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육칠십 년대에 시골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던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 그 시절 내가 가장 따분하게 여겼던 이 한 가지를 들려준다면, 모두들 무릎을 탁 치면서 ‘맞아!’ 하고 공감할 것이다. 그것이 뭣인가 하면 ‘집 보기’다.

아부지는 가계(家計)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은 일로 며칠째 출장 중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엄니가 들 일 나갈 채비를 한다. 그러면서 여덟 살짜리의 나를 불러 세운다.

“잘 보고 있어라 이. 알겄제?”

엄니는 나한테 그저 잘 보고 있으라 한다.

“으응… .”

난 그러마고 어설프게 대답을 한다.

나는 일단 토방마루에 고무신을 깔고 앉아서 아부지가 사리 때에 바닷가로 들고 나갈 낚싯대를 꼬나 잡는다. 그 마른 낚싯대로 마당에서 무엇을 낚겠다는 것이 아니라, 낚으려 하는 놈을 혼내려는 것이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슬금슬금 닭들이 접근하더니 덕석 위에 널어놓은 곡식을 무차별로 헤집고 또 쪼아 먹는다.

“이눔 자식들!”

대나무 장대를 휘둘러 닭들을 쫓아낸다. 아예 장대를 내려놓고 달려가서 고 녀석들을 한참이나 멀리 내쫓아버린다. 그런데 아차, 마당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니 그 달구(닭) 새끼들이 덕석 여기저기에 질펀하게 똥을 갈겨놓았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세상 모든 짐승의 똥 중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바로 닭똥이다. 그대로 뒀다가는 엄니한테 매운 지청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 궁리 저 궁리 해보다가 담벼락을 타고 뻗어나간 호박 줄기에서 잎사귀를 따와서는 닭똥을 치운다.

그 사이에 닭들은 남새밭으로 가서 배추를 쪼아 먹는다. 그것도 말려야 한다. 달려가 닭을 쫓아낸다. 닭을 닭장 밖으로 놓아먹이지를 말든지, 나더러 어찌하란 말인가.

닭을 쫓아냈으니 한참 동안은 안심이다. 그러나 딴청을 피울 수는 없다. 햇볕을 고루 쬐려면 곡식을 뒤집어야 한다. 넉가래를 들고 덕석으로 들어가 밀고 당기고 뒤집기를 한 참,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러니까 엄니가 집을 나서면서 나에게 말한 “잘 보고 있어라, 이.” 이 말 속에는 덕석에 널어놓은 곡식을 잘 말려야 한다는 것, 닭이 쪼아 먹지 않도록 잘 감시하라는 것, 게다가 닭이 채소밭에 들어가서 남새를 먹지 못 하도록 내쫓으란 임무까지 포함돼 있으니 그 한 마디에 삼중 사중의 뜻을 담고 있다. 그뿐이면 모르겠다.

“쩌그 하늘에 수리가 떴당께!”

동생이 하늘을 손가락질하며 법석을 떤다. 얼마 전에는 수리란 놈이 공중에서 뱅뱅 돌다가 급전직하, 남새밭으로 곤두박질하여, 거적뙈기만한 날개를 한 번 휘두르자 배춧잎을 쪼아 먹던 중닭 한 마리가 수리의 날개바람에 벌러덩 나동그라졌고, 순식간에 수리가 두 발로 옴쭉 닭 한 마리를 나꿔 채 간 적이 있었다. 다시는 그 녀석에게 우리들의 양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나는 장대를 들고 나가 공중을 향해 뒤흔들며 무력시위를 하였다.

다시 돌아와 토방마루에 앉는다. 가물가물 졸음이 몰려온다. 그때 잠자리 한 마리가 싸리 울타리에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정신이 번쩍 난다. 일어나서 고놈을 잡으러 간다. 살금살금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거의 손안에 쥐고서도 놓친 적이 무릇 몇 번이었던가. 이번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다가…“으악!”, 난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나뒹군다. 누워 있던 괭이의 날을 밟는 바람에 괭이자루가 벌떡 일어나 내 이마빡을 강타한 것이다. 아, 여덟 살, 나의 고달픈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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