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촌 고령화, 천의 얼굴

  • 입력 2015.07.24 09:05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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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사람들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1만개 내외쯤 된다고 합니다. 이를 연령대별로 다시 세분하자면 조금은 차이가 날 것입니다. 하지만 농촌지역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의 단어 사용 개수는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 자체가 정해져 있고, 마주하는 사건이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의 관심이 비슷한 까닭에 생각의 폭이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니 편협해 지기 쉽습니다. 평생을 무난하게 살아오신 그 연륜이 어느 순간부터는 고집불통에 모난 성격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예전 대가족일 때만 해도 온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다보니 집안 분위기가 다채로웠습니다. 이것저것 해달라고 떼쓰는 아이에서부터 말수가 확 줄어든 사춘기 손자, 결혼을 앞둔 막내딸까지 집안의 식구만큼 이야깃거리가 있고 관심거리가 있어서 삶이 풍성했습니다. 비록 살림살이가 옹색하더라도 말입니다.

요즘은 노인 분 혼자 사는 집들이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 가지 감정이 지속되기 십상입니다. 주로 어둡고 무거운 감정이 오래 갈 것입니다. 얄미운 사람은 오랫동안 밉고 화가 나면 참기 어렵습니다. 날선 감정과 감정 사이에 누가 쑥 들어와서 환기를 시켜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흔치 않습니다. 노인성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말은 합니다. 그래서 보건소 직원이 노인우울증에 대해 교육을 하러 다니며 나름대로 신경을 씁니다. 하지만 노인들의 우울증은 교육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독거노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생활공간을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공동 생활하는 노인 분들끼리 마찰이 일어나고 노인 왕따가 생겨나며 한 분 두 분 공동생활을 기피하는 분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관리자 없는 마을 단위의 공동생활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 마을회관에서 공동식사를 해 드시도록 쌀과 부식비를 정부에서 지급하는데도 매번 밥을 하는 사람만 한다고 귀찮다며 중 노인 쯤 되는 분들은 마을회관 가기를 기피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게다가 마을회관을 지키며 터줏대감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 도량이 넓고 여러 사람 사이를 엮어주는 역할을 하면 좋으련만 지나치게 세도를 피우며 여러 사람을 힐난하는 경우 분위기가 퍽퍽해지기 십상입니다. 마을회관에서 내기 고스톱을 치거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는 몰라도 내면을 보자면 이런 복잡한 사정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경북 상주의 한 마을에서 이른바 ‘농약사이다’ 문제로 농촌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뉴스를 접한 마을 분들도 연일 어찌 됐는지, 왜 그랬는지 관심을 표하십니다. 아직 범인과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좀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 맞듯이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범인의 인격 문제로만 보겠지만 농촌사회의 복잡한 사정을 잘 아는 우리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감정은 고정되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화난 감정, 서운한 감정, 안타까운 감정들이 밝고 따뜻하고 애잔한 감정과 섞여서 두런두런 살아가게 됩니다. 해묵은 감정도 섞여 살아가다 보면 풀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으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고 머릿속에서 적개심이나 분노감이 더 키워질 수 있습니다. 흔히 노인들은 긴 인생을 살아오고, 기운이 없어서 별 일 없이 조용히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은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한 번도 노인들끼리만 생활하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습니다. 지구상 어느 생물종도 그런 예가 없습니다. 지금 농촌문제의 한 중앙에 이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농민의 섬세한 눈에는 이것이 보입니다. 아주 심각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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