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한국의 여름은, 1초도 아름답지 않은 시간이 없습니다?

  • 입력 2015.07.19 10:43
  • 수정 2015.07.19 10:44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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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바야흐로 명절 다음으로 많은 인구이동이 있는 휴가철입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곳 남도의 섬에는 벌써부터 입도하는 차량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세월호로, 올해는 또 호흡기 질환 확산으로 온 나라가 아이들 ‘얼음-땡’ 놀이처럼 그대로 멈춘 듯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연이은 악재로 국민들 정서마저 위축되는 분위기였기에 다들 걱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본격적인 무더위철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전염병 확산이 멈춰지는 듯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어 봅니다.

별스럽게 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기는 명망가의 삶도 아닌, 고작 먹고 사는 정도의 일을 하는 일상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있어 저마다 힘겨워 합니다. 이렇게 꽉 짜여진 일상의 긴장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여행일 것입니다. 때마침 한국관광공사의 국내관광 홍보 문구가 참 적절하게 눈에 띕니다. ‘한국의 여름은, 1초도 아름답지 않은 시간이 없습니다.’ 참으로 유혹적인 문구입니다.

편리한 도시생활에서 잠시 떠나 자연과 함께하는 여름휴가를 보내노라면 머리는 초록색으로 물들고 물 담근 발은 그대로 송사리떼와 친구도 될 듯하겠지요. 고향으로의 휴가는 가족사랑까지 겹쳐 더 값진 일일 것입니다. 고향의 가족 친지 분들도 챙길 수 있고 자연도 즐기니 그야말로 좋고도 좋은 일입니다. 딱 한가지만 뺀다면 말입니다.

7월 하순부터 8월 상순에는 농촌의 모든 공적인 일정이 정지됩니다. 고향으로 휴가 온 손님 대접하느라 약속을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더운 여름날의 손님맞이로 여념이 없습니다. 온갖 입에 맞는 음식 준비에 집안 구석구석 청소며 이불빨래까지 깨끗이 해서 객들을 맞습니다. 누가? 어머니, 형수, 숙모, 고모, 이모… 여성농민들입니다. 여느 펜션 사장보다 더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고 나도 잊은 나의 기억을 떠올려 주며 도시서는 돈 주고도 사 먹지 못하는 음식 대접을 받습니다. 힘든 내색 없이 말입니다.

아닌데? 손님이 오는 것을 더 좋아하시던데? 맞아요. 좋은 사람들 만나니 좋을 수 밖에요. 하지만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사실을 아실랑가. 음식 준비, 청소, 좋은 분위기 조성은 그 자체로 노동입니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의 노동입니다. 가사노동은 원래 이렇게 곱게 포장됩니다. 늘 그래왔고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라고 믿을테지요.

대다수 농민들은 철마다의 여행다운 여행을 경험하지 못하고 삽니다. 주말마다 오토캠핑이다 백패킹, 트레킹, 기차여행 등등 이름도 낯선 여행과 거리가 멉니다. 고작 봄철 꽃놀이관광이나 단풍관광 정도이지요.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딱 두 부류의 삶이 있는 듯합니다. 여행이 있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 농민도 여행을 떠나자는 얘기가 핵심은 아닙니다. 고향으로의 여름휴가에서 여성농민으로부터 받는 지상 최고의 서비스를 당연히 받지 마시라, 여성농민들의 또 다른 귀한 노동임을 잊지 마시라고 덧붙여 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대다수 여성들에게 집은 쉼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나 일이 있는 공간입니다. 들에서도 일, 집에서도 일, 한국의 여성농민은 1초도 맘 편히 쉴 때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매여행, 모녀여행의 이름으로 일상에서 아주 조금 떨어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여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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