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물②/ 흉년을 그렇게 살았느니

  • 입력 2015.07.12 20:3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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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내가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던 1967년 무렵엔 남부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나이 어린 우리들에게까지도 만만치 않은 ‘흉년 살이’의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밭작물은 일찌감치 말라 죽었다. 우리가 학교에 오가면서 더러 몰래 들어가 서리를 하곤 했던 고구마 밭도 여느 해의 모습이 아니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날씨 탓에 잎사귀는 가을 낙엽처럼 타죽었고, 여차보기로 줄기를 잡아당겨 봤으나 앙상한 잔뿌리만 뽑혀 올라왔다.

볏논도 바닥이 마르다 못 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서 가을 소출을 기대할 형편이 못 되었다. 엄니는 남새라도 가꿔보겠다고, 아침저녁으로 양철 물동이로 샘물을 퍼다 주곤 했지만 채소밭의 사정도 신통치 않았다. 엄니 아부지는 저녁이면, 서녘 하늘에 곱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면서 “내일도 비가 오기는 틀려부렀네!” 하면서 매일이다시피 한숨을 내쉬었다.

알 수 없는 일은, 육지에 흉년이 들면 바닷가에도 흉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미역이며 톳을 비롯한 해조류들로 풍성하게 덮여 있던 갯바위가, 유독 그 해에는 황폐하다시피 맨살을 드러냈고, 하다 못 해 조새로 굴 껍질을 깨보아도 알맹이가 있는 듯 마는 듯하였다.

그러했으니 식구들의 먹을거리가 문제였다. 그해 나는 이른바 ‘연명죽’이라고 불리는 나물죽을 꽤 여러 끼 먹었다. 곡식이 워낙 귀했으므로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솥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이는 죽인데 쌀의 양이 워낙 적다 보니 말이 죽이지 나물국이나 한가지였다.

그때 찾아온 흉년은 나로 하여금 송쿠(송키)를 벗겨 먹을 기회도 주었다. 삼국사기 열전편의 <온달전>을 보면 평강왕의 공주가 온달의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 가난한 온달이 누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가고 집에 없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벗겨 먹은 것은 소나무 껍질이었다. 우선 낫으로 소나무의 단단한 겉껍질을 살짝 벗겨내면, 붉은 속껍질이 나온다. 여느 지방에서는 그 붉은 속껍질을 벗겨 모아 물에 푹 삶아서 떫은맛을 제거하고 먹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속껍질과 나무줄기 사이에 있는 거의 액체상태의 부드러운 흰 속살만을 먹었다. 하지만 그 까짓것 먹는다고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는가? 어쩌다 학교에서 우유가루 배급이라도 줄 때면 집에 돌아가는 중에 거의 반을 퍼먹었다가 한 이틀 설사로 고생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섭취가 다소 부실하였기로 씩씩한 사나이들이 주눅 들어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정부에서 가뭄 대책으로 들판 여기저기에 우물을 파주었다. 순전히 농업용수 확보를 위하여 주로 논 가운데에다 팠던 그 우물을 관정(管井)이라 하였다. 우리 논 한 귀퉁이에도 관정 하나가 만들어졌다. 논바닥을 한참 파내려가자 지하수가 솟아서 거의 지표면까지 차올라 왔다. 우리는 그 관정으로 뛰어들어 한여름의 더위를 쫓았다. 나는 그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지 못 하였다. 어느 날 다섯 명의 동무들이 그 우물가에 모여서 내기를 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부터 관정 밑바닥을 닿고 올라오기 시합하자.”

하필이면 그 제안을 내가 하였다. 종석이가 첫 번째로 정해졌다. 바닷가에서 굴러먹은 아이들이라 수영에다 자맥질은 모두 할 줄 알았다. 종석이는 똑바로 선 채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물 벽에 돌출한 돌을 짚고 물속으로 내려가더니 한참 만에 수면위로 올라와서는 참았던 숨을 내뿜었다.

“나, 발로 우물바닥 닿고 올라왔어!”

종석이는 성품이 착하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는 믿을 수 없다고, 증거를 내놓으라고 우겼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이번에는 머리부터 거꾸로 자맥질하여 관정의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녀석이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사색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근처에 있던 어른들도 달려왔다. 아주 한참 만에 종석이 녀석이 물위로 떠올랐다. 어른들이 녀석을 엎어놓고 뱃속의 물을 빼는 등 난리가 났다. 이윽고 우리의 종석이가 푸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코피도 터져 나왔다. 녀석은 그 난리 통에도 우물바닥에서 집은 차돌멩이 하나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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