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요새는 여자세상이여?

  • 입력 2015.07.12 20:34
  • 수정 2015.07.12 20:35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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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꼭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부부가 같이 움직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바빠져서 해걸음 선선할 때 두 배로 손을 놀립니다. 그러고도 집에 들어서자마자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남는 식구들 저녁식사를 챙깁니다. 매번 잘 챙기는 것이 아니지만 안 챙기고 나가면 그만큼 마음이 무겁고, 챙기고 나가면 바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몸만 챙기고서 일찌감치 차에 올라 탄 남편은 시간약속을 잘 안 지킨다고 타박을 하며 종용을 합니다. 그러게요, 다른 식구들 안 챙기고 내 몸만 건사하자면서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나의 손을 스쳐야 되는 일이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요. 그런데도 남편은 태연히 ‘시간개념’의 문제로만 접근합니다.

가정일을 돌보는 것이 도시남자와 농촌남자가 다르고 성평등이 정착돼 가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다르고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 고정적인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가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남성들이 가사일을 돌보는 평균 시간이 10분이 못 된다 하고 여기에다 농촌은 채 3분 남짓이라 하니 산 넘어 산이지요.

하마 남자일, 여자일 구분이 줄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현실을 돌아보면 또 아까 그 자리에 머물기가 일쑤입니다. 생각만 바뀌어서 될 일이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은 하기가 싫습니다. 이제까지 그러지 않고도 문제없던 삶에 까칠한 아내의 사사건건 간섭이 억울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고 보면 주위의 어떤 남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도 끝없는 요구가 지겹기도 하겠지요. 그럴 때쯤 비장의 카드를 던집니다. 정부의 농업정책이 제 아무리 중농정책으로 방향이 바뀌어도 가부장적인 농촌사회 분위기가 안 바뀌면 농촌의 미래는 없다, 여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고전적인 성역할에 가두면 어떤 젊은 여성이 농촌에 살겠는가, 여성이 없는 농촌에는 젊은 남성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어지기가 어렵고, 학교도 더욱더 문을 닫을 것이고 어쩌고저쩌고.

이 핑계 저 구실 대며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다가도 여기쯤 오면 자세가 살짝 수그러듭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한국농업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질릴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남녀의 성역할은 힘의 관계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애정과는 별개로 끝없이 확인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옛말이고 요새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여성들이 더 살기 편하다고 생각하신다고요? 진정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럼 당장 역할을 바꿔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남자는 편하고 여자는 불편하다’ 로 단순하게 해석하지 마시고, 남자도 살기 어렵고 여자도 살기 어려운 농촌인데 여성들이 더 많이 기피한다면 어떤 점이 그다지도 불편한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야 농촌에 내일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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