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낱말 짜깁기와 농업

  • 입력 2015.07.10 14:15
  • 수정 2015.07.10 14:20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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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칼럼처럼 간단한 글이건 논문처럼 복잡한 글이건 간에 글을 하나 쓰려면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기 마련이다. 또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이나 낱말이 마음에는 들지만 지금 쓰고자 하는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그 문장이나 낱말을 인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 못하면 결국 내가 쓰는 글은 그 뜬금없는 문장이나 낱말로 인해 앞뒤가 안맞는 글이 되거나 표절시비가 붙는다. 최근 표절 논란이 일었던 한 소설가의 경우가 후자의 경우다. 후자의 경우는 법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지만 전자의 경우는 법의 문제를 떠나 그 목적이 모호한 이상한 글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 글이 지극히 사적인 글이 아니라 공적인 것일 경우에는 문제는 심각해진다.

며칠 전 제4차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에서 농수산업과 관련한 내용은 전자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듯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몇 개의 낱말을 짜깁기하면 아주 그럴 듯한 문장이 되기는 하지만 도대체 그 문장의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날 나왔던 이야기들을 보면 미래성장산업, 창조경제, 정보통신기술, 수출산업 등의 낱말들이 농수산업과 짜깁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부연설명을 위한 문장들은 컴퓨터로 먹고살 수는 없다, 식품산업이 IT보다 더 유망한 시장이다, 농업은 먹을거리 생산하는 기초산업, 인류역사가 있는 한 영원 등이다. 거기다 우물 이야기와 이 정부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인 ‘대박’도 있다. 이걸 보면 분명 정부는 농업이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고는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아무리 봐도 알 도리가 없다.

지금 당장 농민들은 쌀시장개방에 따른 밥쌀 수입에서부터 TPP에 이르기까지, 최근에는 봄 가뭄으로 인한 채소 수급까지 당면한 문제로 인해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에 절망에 가까운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과 농민들의 의견에 대해 정부가 성의있는 답변을 했다거나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면담을 요구했다가 경찰에 끌려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저 낱말들은 그야말로 그럴 듯한 낱말들의 열거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농업은 앞으로(!) 미래성장산업이나 창조경제가 될 필요가 없다. 그 자체가 이미 과거, 현재를 거쳐 미래에까지 국민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핵심이다. 그리고 씨앗 하나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농산물을 생산해 왔다. 그러니 앞으로 미래성장이나 창조경제를 위해 무언가를 더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지금까지 농업·농민이 해왔던 것을 앞으로도 잘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뿐만 아니다. 최근 양파·마늘 수입 결정처럼 정부는 농산물값이 조금이라도 오를 기미가 보이면 소비자물가를 내세우며 수급조절이라는 이름으로 즉각 수입을 결정한다. 물론 빠지지 않는 것은 20% 남짓이라는 식량자급률이다. 이 마당에 수출산업이라는 낱말은 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보통신기술과의 융합도 마찬가지다. 전자상거래, 농업기술 전산화 등 아주 그럴 듯한 사업들이 지금까지 있었지만, 그 사업들이 농민들 몇몇의 소득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농업의 근본문제를 해결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농민들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돈 몇 푼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농사를 지어도 될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런 기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낱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먹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국민들에게도 10년, 아니 그보다 더 먼 미래에도 먹을거리 걱정 안하게 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니 이미 잘 하고 있는 농민들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말도 안되는 낱말짜깁기로 괴롭히지나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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