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25회

  • 입력 2015.06.22 08:15
  • 수정 2015.06.22 08:1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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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택은 종가의 창고를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으로 뜯어왔다. 인부를 사서 꼬박 닷새 동안 뜯고 실어온 목재는 엄청났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를 짓고도 남을 분량이었다.

“애비야, 우리 형편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근심어린 말로 걱정을 했지만 선택은 의기양양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도 사는가 싶게 한 번 살아봐야죠.”

▲ 일러스트 박홍규

“글쎄, 우리 조카님이 어련히 알아서 허겄지만 너무 무리해서 크게 짓지는 말아라. 혹시 빚이라도 지면 큰일이니께.”

선택이 집을 짓겠다고 하자 더 좋아하던 삼촌도 어마어마한 목재를 보자 좀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선택네 집짓는 일에 손을 보탰다. 평소에도 새로 집을 짓는 집이 있으면 울력하듯이 함께 했지만 이번에는 특별했다. 고작해야 흙을 이겨 바른 초가삼간이나 지어보았던 이들에게 대목수들이 붙은 기와집을 짓는 것은 처음으로 보는 진기한 구경거리였다. 게다가 걸어놓은 가마솥에서는 날마다 밥을 짓고 국이 끓어대니 온통 잔칫집 분위기였다. 선택은 기왕 마음먹은 거 일손을 보태는 사람들에게는 집안 어린애들까지 와서 배불리 퍼먹도록 했고 밥 한 끼가 아쉬운 사람들에게 그것은 보통 보시가 아니었다. 높다랗게 다진 바닥에 주춧돌이 놓이고 들보가 올라가자 그에 걸맞게 선택은 마을에서 당당히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 되어갔다. 종가의 목재를 헐어다가 새로 기와집을 짓는다는 것은 특별한 상징이 되어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선택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마치 정씨 종가가 선택네로 뒤바뀐 것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이다. 예전의 정참봉 네에서 젊은 정주사네가 집안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듣기에 싫지 않은 달콤함이었다.

집을 지으면서 선택은 많은 것이 변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아직 마을에서는 제일 젊은 축에 속하는 데도 사람들은 선택을 대하기를 마치 예전의 상전 대하듯이 했다. 선택이 그런 대접을 받고자 한 것은 전혀 아니었고 전과 다름없이 마을 사람들과 지내는데도 그들은 자꾸만 선택을 마치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인 것인 양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얼까? 돈의 힘일까? 아니면 저들 속에 남아있는 봉건적인 노예근성인가?’

때로 선택은 그런 자문을 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제 선택은 마을에서 제일 영향력있는 인물이 된 것만은 틀림없었다.

마침내 집이 다 지어진 날, 또 한 번 선택은 마을 잔치를 열었다. 돼지를 두 마리나 잡고 떡이며 술이며 넉넉하게 해서 잔치는 이틀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해 선택은 스물일곱의 나이에 면내에서 제일 젊은 이장이 되었다. 마흔은 넘겨야 이장을 맡는 게 보통이었다.

새집으로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선택이 희한한 기계 하나를 들고 왔다.

“이 요상하게 생긴 게 뭣이라냐?”

삼촌은 이상하다 못해 두려운 모양이었다.

“삼촌 읍내에서 라디오 못 보셨어요? 이게 바로 라디오라는 거예요.”

선택이 들고 온 것은 서너 해 전에 금성에서 처음으로 만든 국산라디오였다.

“라디오? 난 들어보긴 했어도 보기는 처음이다. 근데 이것이 그렇게 비싸다던데 이게 어디서 났다냐?”

사실 라디오는 아무리 선택이 쏠쏠하게 돈벌이를 한다 해도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들어오던 제니스 보다는 훨씬 싼 국산이라고 해도 쌀 서른 가마니 값이었다. 라디오는 바로 선택의 동업자인 박태식의 선물이었다. 그것도 신품이 아닌 중고였지만 대단한 선물이었다. 단파로 잡히는 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어머니와 숙모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퇴침보다 좀 더 큰 기계에서 사람 목소리가 종알거리며 흘러나오자 기겁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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