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참외에 모두의 믿음을 담아

경북 성주 ‘참살이공동체’를 다녀오다

  • 입력 2015.06.21 15:20
  • 수정 2015.06.21 15:24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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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사진=한승호 기자]

“농활 기획으로 가치 있는 농사를 알리려 합니다.”

“가치 없는 농사가 어딨어. 허허.”

참외수확 농활은 ‘우문현답’으로 시작했다. 지난 15일 기자가 찾은 농활장소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남짓 걸리는 경북 성주군 ‘참살이공동체’다. 2004년 성주군농민회 회원들이 만든 참살이공동체는 지난 3월부터 유기농참외 수확이 한창이다.

올해 참외농사는 갖은 병충해와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백준현 참살이공동체 대표는 “일교차도 크고 노균병도 와서 작황이 안 좋다. 최근까진 진딧물과 전쟁을 벌였다”며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성주지역 참외 생산량은 30~40% 가량 감소했으며 최근엔 성수확기를 맞아 가격마저 내림세다.

참살이공동체는 한살림·행복중심·우리농 등 생협연합회에 생산한 유기농참외의 대다수를 출하한다. 가격을 미리 정한 계약생산 체계이지만 작황부진과 가격하락의 여파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백 대표는 “10㎏에 3만5,000원 하던 일반참외 시세가 지금은 1만8,000원대다. 시중단가와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 아무래도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으로 쏠리게 된다”며 “메르스 감염까지 맞아 소비가 급감해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관내농협들도 대출상환기일을 1달 연장하는 등 지역 내 위기감이 높은 상태다.

상처입은 하우스에서 참외 수확

▲ 유기농 하우스답게 잡초가 수두룩하다. 홍기원 기자가 하우스 입구의 풀을 제거하고 있다.
이날 오후엔 선남면에 자리한 이재동 회원의 참외밭을 찾았다. 5동의 하우스를 둘러보니 노균병, 총채벌레, 응애 등이 할퀸 상처가 고스란히 눈에 띄었다. “이제부턴 나방이 문제다라며 참외 잎에 붙은 애벌래를 보여준 이 회원은 “무당벌레같은 천적들이 늘어나는 시기와 맞으면 괜찮은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며 씁쓸히 웃었다.

2007년 무농약 참외농사로 시작한 그는 2011년에 유기농참외로 전환했다. 올해 유기농의 어려움을 체험했지만 농촌 환경을 보전하고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겠단 다짐을 흔들진 못했다. 행복중심생협 생산자회장이기도 한 이 회원은 “화학비료를 쓰면 당장 표가 확 나지만 해가 갈수록 비료투입을 늘려야 한다”면서 “유기농은 처음은 어렵지만 땅이 안정되면 생산량도 늘고 병도 덜 온다”고 설명했다.

이 곳 하우스는 벌을 통한 자연수정을 하고 있다.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만용을 부렸다가 이마에 벌침을 쏘였다. 목장갑에 붙은 벌도 온몸을 떨며 침을 놓았지만 장갑을 뚫지는 못했다.

유기농업의 어려움에서 잡초를 빼놓을 수 없다. 일단 하우스 입구부터 잡초매기를 시작했다. 약초도 있다는데 하우스 옆에서 자라면 잡초일 뿐이다. 뿌리째 뽑다보니 땅에서 지렁이가 나온다. 지렁이에겐 안됐지만 하우스 옆 잡초들은 벌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참외 수확은 다음날 새벽에 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 6시경 참외 하우스 내 기온은 34.4도. 하우스 바깥에서도 비오듯 땀이 흘렀는데 하우스 내에서 작업은 무리가 있다. 또, 참외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새벽에 수확하는 게 좋다고 한다.

▲ 홍기원 기자가 넝쿨 사이에 숨은 참외를 쪽가위를 이용해 수확하고 있다.

다음날 새벽 5시 30분. 드디어 참외와 마주했다. 인근의 참외하우스들도 부산한 모습이다. 노랗게 다 익고 줄기가 마르지 않은 참외를 따야하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론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쪼그려 앉아 잔가시가 난 넝쿨을 슬며시 헤집어야 참외가 보인다.

앉으면 길이 105m의 하우스 반대편이 꽤 멀어 보인다. 처음엔 신기하고 재밌다. 그래서 수확체험하러 온 소비자들은 한낮에도 하우스에 들어가 참외를 따간다고 한다. 하지만 잔가시에 찔린 팔뚝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땀이 맺히는 와중에도 ‘팔토시라도 차야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믿지 못하면 헛일이다”

반복작업의 피로를 잊고자 수다를 시도해봤다. 빈한 상상력을 끌어다 참외수확을 금캐기에 비유하자 방송프로그램에 나온 옛 일화가 답변으로 나왔다.

“한 번 참외수확을 촬영해 간 적이 있는데 방송을 보니까 참외농사의 어려움은 하나도 안 나오고 참외로 농민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흥미 위주로만 소개하더라고. 그래서 방송국에 항의전화를 한 적도 있어.”

농업전문지 기자라고 이런 시각에 물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번 농활에서 이어진 우문현답 속에 자신을 가다듬어야겠단 자각이 무겁게 다가온다. 참외로 가득찬 광주리 무게는 15㎏남짓이다. 한두 번 들어보니 두 팔로 받쳐 옮기는 것도 힘들었다. 이 힘없는 두 팔로 오늘 얻은 무거운 교훈을 어떻게 견뎌야할까.

▲ 본지 홍기원 기자(오른쪽)가 지난 16일 새벽 경북 성주군 선남면의 한 유기농참외 하우스에서 갓 수확한 참외가 담긴 바구니를 농가주인인 이재동씨에게 건네주고 있다.

이 회원은 “먹거리 안전성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생협 소비자들도 늘었다. 늘어난 공급을 채우다보니 생산자도 갑자기 늘었다. 그러다보니 관리가 미흡해지고 품목간 생협간 경쟁도 생겼다”며 “협동조합 운동으로서 생협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있는데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믿지 못하면 헛일이다”고 말했다.

참살이공동체는 믿음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유기농인증을 참살이공동체 이름으로 받았다. 수확한 참외는 공동작업장으로 옮겨 여기에서 선별부터 포장작업까지 공동으로 수행한다. 2대의 선별기에 모든 회원이 붙어 다른 회원이 가져온 참외의 때를 벗기고 정성스레 포장해 박스에 담는다.

오전 11시경 도착한 한살림 차에 참외를 옮기면서 짧은 농활은 끝났다. 참살이공동체 회원농민들은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업성과인 믿음을 참외에 담았다. 이런 생산자들이 있기에 생협 조합원들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도 가능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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