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보리·밀③/ 도리깨질

  • 입력 2015.06.21 02:00
  • 수정 2015.06.21 02:0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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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집안 여기저기 어지러이 튀는 보리…
- 정약용의 <보리타작(打麥行)> 일부 -

▲ 이상락 소설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집안이 온통 보리타작을 하느라 난리가 났다. 어쩐지 엄니가 식전아침부터, 엉겨 붙은 눈곱 때문에 비틀거리는 나를 끌고 나가서는 마당에 덕석을 깔아라, 보릿단을 날라라, 난리법석을 떨더라니.

사실 오늘은 하굣길에 동무들과 장어 잡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팽나무 아래쪽 냇물을 막고 그 웅덩이에 독초를 찧어서 풀면 바위틈에서 도굿대 만한 장어가 나와서 독에 취해 떠오를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난 결국 장어 사냥을 포기하고 집으로 행했다.

“반공일 날잉께 학교 끝나자마자 해찰 피지 말고 피잉 온나 이.”

아침에 엄니가 한 말이 귓가에 쟁쟁거렸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5학년이었으므로, 엄니의 부지깽이 욱대김 쯤 무서워할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화만사성’을 위해서 엄니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냥 혼자 빠져나오기는 민망해서 동무들의 뒤통수에다, “풀물 고것 조깐 푼다고 장어가 잽히겄냐, 빙신새끼들!” 괜히 그런 흰소리 한 마디를 쏘아 주었다.

보릿단들을 풀어서 마당 가득 줄맞춰 눕혀놓고서 아부지, 작은아부지, 삼촌, 그리고 윗동네에서 온 허풍쟁이 아재 이렇게 네 사람이 둘씩 마주보고 서서 돌깨질(도리깨질)을 한다. 장대 끝에 비녀 모양의 꼭지를 박고, 거기에 물푸레나무 서너 가닥을 나란히 잡아매어 돌아가도록 장치해 놓은 그 ‘돌깨’라는 물건은, 남자 어른들만 쓰는 탈곡 기구였던 탓에 나는 5학년 1학기가 되도록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돌깨를 오른쪽 어깨 위로 반원을 그리면서 들어 올리면, 공중에서 물푸레나무 가닥의 휘추리가 비잉 한 바퀴 돌고, 그 순간에 땅바닥을 향해 힘껏 내려치면 보릿짚에 붙어있던 이삭들이 박살이 나서 알곡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어른들은 ‘으이차, 으이차!’, 뭐 그 비슷한 소리로 장단을 맞추면서 위치를 바꿔가며 돌깨질을 했고, 공중에는 까시락(까끄라기)이 부옇게 날아다녔다. 엄니는 떨어낸 알곡들을 남박으로 끌어다가 한 쪽으로 모으고는 다시 새 보릿단을 풀어 덕석 위에 펼쳤다.

“자, 밥들 묵고 하드라고!”

모두가 도리깨를 내려놓고 마루위로 올라왔다. 어른들이, 정약용의 표현 그대로 ‘큰 사발에 한 자 높이나 되게 쌓아올린 보리밥(大碗麥飯高一尺)’에다 막걸리까지 먹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나는 서둘러 요기를 끝내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도리깨 저놈을 한 번 휘둘러보자, 하고 속셈을 했다. 정약용은 선비 체면 때문에 일꾼들이 돌깨질 하는 것을 구경만 했겠지만, 나는 어린 아이 체면에도 불구하고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몸살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차, 밥을 먹고 난 뒤, 바가지에 있던 찬물을 생각 없이 들이켰는데 물에 떠있던 까시락 하나가 목에 걸리고 말았다. 구엑, 구엑…엄니가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봤으나, 방향을 거꾸로 잡은 까시락은 자꾸만 목젖 너머로 기어들고 있었다.

나는 결국 까시락이 아직 목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 이제 괜찮다, 하고 털고 일어나서는 마당으로 내려가 돌깨를 잡았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흉내 내어 일단 공중으로 쳐든 다음에 보리 이삭을 향해 내려쳐 봤으나 물푸레나무 휘추리가 번번이 직각으로 땅바닥을 찍었다. 마루에서 어른들이 껄껄대며 웃었다.

그날 밤 허풍쟁이 아재와 함께 잤다. 그는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돌깨질을 해주고 삯을 받는다 했다. 아재는 잠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겪었노라며 도깨비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 번은 돌깨질을 끝내고 달밤에 산길을 걸어서 집에 가고 있었는디 아, 도깨비란 놈이 나타나서 씨름을 하자는 것이여. 물론 내가 이겨 부렀제. 그란디 고놈은 자빠지면 일어나서 또 하자고 그라고…부아가 나드라고. 그래, 허리끈을 풀어서 고놈을 참나무에다 묶어놓고 도망쳐부렀제. 그란디 말여, 이튿날 가봉께 아, 글씨, 내 돌깨가 참나무에 묶어져 있드랑께….”

그날 밤 보리 까시락은 목구멍 너머에서 자꾸만 걸리적거렸고, 꿈자리마저 뒤숭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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