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사일만 해도 모자라는 시간

  • 입력 2015.06.21 01:57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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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한창 바쁜 모내기철 지난 들에 산꿩소리가 울립니다. 이즈음엔 수확한 마늘 다듬어서 출하하느라 창고 안에서 바쁜 철입니다. 바쁜 철 끝나면 좀 한가해지나 싶어서 해야 할 일들 미뤄 왔는데 막상은 바쁜 일 끝나도 일천지입니다.

하지를 즈음한 요즈음 낮 길이는 최대한 길어져 새벽 5시도 못 되어 밝아오고, 저녁 늦게서야 땅거미가 내려앉습니다. 그 사이 농민들은 뭘 해도 일을 하지, 쉬거나 놀지 않습니다. 아직 한낮 더위로 오수를 즐길 정도는 아니니 그야말로 해 길이만큼 일을 하는 셈입니다.

좁은 농지의 구석구석을 알뜰히 채워 일하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가르쳐 왔고 또 어느새 일이 몸에 익어 농민이면 해와 함께 일을 하게 됩니다. 소득 3만불 시대, 너도나도 여가를 즐기겠다고 오토캠핑이다 백캠핑이다 별스런 이름을 다 갖다붙여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지천입니다. 휴일이면 도로가 막힐 지경인데 그것이 별나라 얘기 쯤 되는 듯 농민들의 일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노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농사일로 틀어진 몸을 돌보는 가벼운 운동을 정기적으로 할 여유조차 갖지 못합니다. 마을회관에 요가교실을 열어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합니다.

2010년 우리나라의 평균 노동시간이 2,193시간이랍니다. 하루로 계산하면 주말 빼고 8시간 좀 넘게 일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으로는 일하고 나서 쉬는 정도 외에 별다르게 새로운 무엇을 배우거나 여가를 활용하기는 어려운 시간이랍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를 꿈꾸거나 시도하지 못하고 그냥 주어진 조건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네요. 그러고 보니 언뜻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먹고 살기 어려울수록 바깥세상에 눈 돌리기 어려운 현실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 한 것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의 평균인 1,749시간에는 못 미치는 시간이랍니다.

농민 입장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시간입니다. 더군다나 여성농민의 입장에서 말할 나위가 없지요. 여기에다 언제나 가사노동 2~3시간이 더해집니다. 시간만 보면 세계 최장장장 시간동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표현하는 것이 허다합니다. 딱 일만하고 사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둘러볼 여유도 다른 사람과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살펴볼 사색도 어렵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각자의 삶을 존중할 만큼의 여유가 안 생기는 것입니다.

농사시간이 긴 까닭은 농사일이 늘어나는 것이고 더 근본적인 원인은 농산물 가격 하락입니다.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사가 허다하므로 농사량을 늘리고 거기에 몸이 메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해질녘 마을사람들에게 섹소폰 연주를 선사하는 어르신, 밴드를 결성해 베이스 치고 드럼치며 여가를 보내는 여성농민들, 칠십평생을 글로 써서 자신의 회고록을 책으로 내는 할머니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상상속만의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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