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업] 통일쌀을 심는 농부의 마음

- 6.15 공동선언 15주년에 부쳐 -

  • 입력 2015.06.12 17:49
  • 수정 2016.07.25 21:16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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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남북공동행사가 ‘역시나’ 또 다시 무산되었다. 이번에도 남북이 각각 기념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

수구세력은 6.15 공동선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6.15 공동선언 백지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에겐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합의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북의 체제는 붕괴되어야 하고, 흡수되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간 교류와 협력이 활발했던 지난 시기에도 그들은 북의 체제를 부정하였고, 틈만 나면 흡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분야의 교류협력에서도 그와 유사한 주장들이 시시때때로 제기되었다. 식량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의 처지를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변화시키는데 적극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나왔다.

비록 그 당시에는 소수 의견에 불과했지만 농업협력을 통해 중국식 혹은 베트남식 농업개혁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이나 베트남이 스스로 농업개혁에 적극 나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이나 조건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그러한 배경과 조건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아니면 외면해 버렸다. 중국과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체제상의 안보위험을 먼저 해결했다.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체제위협 요인이 사라지면서 자기 스스로 농업을 비롯한 경제전반에 걸친 다양한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극도의 제재와 봉쇄를 당하고, 외부로부터의 정치군사적 위협이 가중되고 있던 당시의 북한에게 중국식 혹은 베트남식 농업개혁이란 체제의 포기 내지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한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체제 인정 및 존중은 6.15 공동선언뿐만 아니라 7.4 남북공동성명(1972)과 남북 기본합의서(1991) 등에서도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합의되었던 사항이며, 이는 2007년 10.4 공동선언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결국 수구세력들은 지금까지 남북이 공식으로 합의했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공식적으로 6.15 공동선언을 폐기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6.15 공동선언의 합의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질주해 왔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6.15 공동선언 자체가 국민의 의식 속에서 점차 흐릿해지고 있고, 이러다 나중에는 아예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6.15 공동선언을 역사 속에서 되살리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도 힘겹지만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정부가 포기한 남북공동행사의 가능성을 민간 차원에서 살려낸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나중에라도 되살려낼 수 있는 불씨 정도는 보전한 것이다. 또한 각 지역별로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다양한 시도들도 있다. 비록 지금은 각각의 작은 몸짓이지만 수많은 날개 짓에서 6.15 공동선언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래 전부터 농민들이 이어가고 있는 통일쌀 경작도 그 작은 날개 짓의 하나이다. 올해도 제주에서 철원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이미 통일쌀 모내기를 마쳤다. 정성스럽게 한 모 한 모 심는 농민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작은 날갯짓이다. 비록 올해는 이 통일쌀을 북녘 농민들과 함께 나누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언젠가 함께 통일쌀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들이 가득 담겨 있다.

통일쌀은 농민들이 6.15 공동선언을 마음에 간직하는 방식이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그 날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놓은 그릇과 같다. 농민의 교류가 끊어지고 농업협력이 모두 중단된 지금 통일쌀이 유일하게 남과 북의 농민들을 마음으로나마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통일쌀이 그 풍성한 결실을 맺는 날에 우리는 그 속에 담긴 농민의 땀방울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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