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니들이 호미를 알아?

  • 입력 2015.06.12 17:44
  • 수정 2015.06.12 17:46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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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이곳은 몇몇 대농가들을 빼고는 모심기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대농가라고 해도 김제나 나주 들녘들 농가에 비하면 어린애들 장난 같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 섬땅에서 백마지기 넘는 농사면 입을 쩍 벌릴 정도입니다.

올해는 밤기온이 낮아 모농사를 망친 농가들이 적잖게 모판을 사서 심기도 했습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키 작은 모를 심는 농가에서는 초기 물관리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길에서 만나면 “모는 다 심었는가”가 인사입니다.

그 말의 속뜻은 이제 큰일은 다 끝내고 좀 편안은 하냐, 그동안 큰일 하느라 애썼다의 다른 표현이지요. 이 와중에 웃녘에는 가뭄으로 논이 마르고 밭이 시들어 농민들의 시름이 메르스 다음으로 나라의 시름이 되어가는 듯해 걱정이 앞섭니다. 대주기 가뭄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도 점쟁이 점괘처럼 귀가 솔깃해 집니다.

모심기를 끝냄이 농사일의 끝은 아닙니다. 농민들은 죽어야 일이 끝나는 것이지 한 철 농사 끝나는 것은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 동안 논농사 돌보느라 미뤄뒀던 밭농사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깨 솎고 고추고랑 풀메고 줄치는 것으로 시작해서 콩밭 등 잡초로 뒤덮여가는 구석구석의 밭을 돌봐야 합니다. 정말이지 오뉴월 하루볕의 힘을 절감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럴 때면 역시나 호미를 든 여성농민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시원한 아침저녁으로 밭고랑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손보기를 몇날 며칠동안 해야 밭이 밭다와 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쓰는, 손잡이가 짧은 종류의 호미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손잡이가 짧은 까닭은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해서라고 하지요. 남부로 내려올수록 짧고 작은데 제주의 것이 제일 작다고 하니 제주 여성농민의 손놀림이 얼마나 빠르고 야무질지 아니 보아도 눈에 선합니다. 서서 설겅설겅 일하지 않고 힘들어도 쪼그리고 앉아 알뜰히 작물을 돌보아 온 여성농민의 노동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여성농민들이 얼마나 야무진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칭찬이지만 칭찬속에는 아픔이 슴베어 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일하는 자세가 근골격계통에 얼마나 많은 질환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특히 척추와 골반뼈 뒤틀림의 주 원인입니다. 전세계 수많은 노령의 여성농민들이 우리나라 여성농민들처럼 허리가 뒤틀리고 다리길이가 차이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은 다부지고 야무져서 이제껏 잘해 왔으니 이대로 둬도 된다구요? 아닙니다. 누군가는 한국의 식량자급과 식재료 다변화의 주동력인 여성농민의 몸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속가능성이 있습니다. 호미 끝에 호미보다 가벼운 경량모터를 달고, 호미보다 싼 가격으로 보급하는 등 어떻게 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렵다구요? 달나라 별나라도 가는 세상에 뭐가 안 되겠습니까? 고민이 없을 따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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