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보장’과 ‘눈치’ 사이

  • 입력 2015.05.29 16:48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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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부지깽이도 일하러 일어선다고도 하고, 여우가 애를 업어가도 모르는 철이라고도 하는 본격 영농의 계절입니다. 잔잔한 봇물에 초록빛 산 그림자가 비쳐서 일렁이는 이맘때쯤이면 눈은 호사스럽지만 몸은 열 개라도 모자랄 판입니다. 월동작물 수확에 1모작 모심기, 또 2모작 모내기 준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량없이 바쁩니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 사는 곳이면 농사일도 중요하지만 틈틈이 모임들이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단체의 모임이나 행사 등 갈 데도 많습니다. 갈수록 농민 수는 줄어드는데, 고만고만한 기존 모임은 그대로인 채 새로운 모임은 또 늘어갑니다. 특히 주요 농업정책이 바뀌면 그 사업을 추진할 조직을 새로이 구성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또 그 사람입니다. 때문에 바깥출입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작목반도 몇 개는 기본이고 각종 단체, 동친회, 친목모임 등 모임만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또 그게 자랑이기도 합니다. 넓은 인맥과 활력의 상징인 셈이니까요. 그렇다면 모두에게 그럴까요? 여기서 모두란 남과 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다릅니다.

남자가 바깥출입이 잦으면 활동적인 것이고 여자의 외출은 그 이름도 싸돌아 댕긴다입니다. 농사일이 처지면 여자가 싸돌아 다녀서 그런 것이고 남자는 많은 일들로 바빠서 그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자의 외출은 보장을 받고 여자의 외출은 다른 가족들로부터 눈치를 받습니다. 때문에 눈치 받지 않으려고 외출 며칠 전부터 미리미리 챙겨서 탈이 안 생기도록 단도리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거나 동창 모임을 나가는 것에는 호의적이다가도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면 남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아예 참여를 불허하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아직도 여자가 똑똑해지면 피곤하다고 세상물정에는 눈과 귀를 닫고 비켜서길 바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내의 사회활동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여러 단체의 면연합회나 마을 부녀회의 임원을 맡으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농촌여성의 사회활동의 벽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경험이 적다 보니 스스로도 자신감이 낮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성의 사회활동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활동적인 여성이 많다면 농촌에 활력이 넘칠텐데 그걸 모르니 안타까울 일이지요. 그 다음으로 아직도 여성은 가정 내에서 머물기를 바라는 후진적 농촌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아내의 활력과 가정의 행복지수 상승을 모르는 구시대적인 문화인 셈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할 말 다하고 바빠도 할 것 다하는(그래봤자 집안 분위기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여성농민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은 여성은 농촌에서 살기를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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