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화가 나면 못할 짓이 없다?

  • 입력 2015.05.24 09:15
  • 수정 2015.05.24 09:16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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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농사일이 바쁠 때면 가끔 농사일을 도우러 오는 아는 언니네 부부가 있습니다. 먹을거리까지 한 보따리 싸 와선 신나게 일하고 가벼운 술 한 잔을 반주로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농촌살이의 최고의 재미입니다.

농사일이 많아 힘들다고 씩씩거리다가도 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하고 음식을 나누면 유다른 재미를 느낍니다. 세상 속에 제대로 섞여 사는 것 같고 또 일을 하고 나면 관계가 한참은 깊어집니다. 뭐 굳이 농사일이 아녀도 같이 먹고 시간을 보내면 사람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당연하니 그 자체로도 좋다만 농사일을 같이하면 어려움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을 같이 함으로써 공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라 그 무엇을 같이 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고추를 심으러 와서는 언니가 자꾸 투덜대고 볼멘소리를 했고 결국 우리가 보는 앞에서 큰 소리를 냈습니다. 평소에 없던 일인지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어떻게 중재를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결국에는 애써 준비한 저녁식사도 않고 바쁜 일이 있다며 이내 자리를 떴습니다. 부부가 일을 하러 같이 왔을 때는 그리 나쁜 사이가 아녀 보였는데 남들 보는 앞에서도 다툰 요량이면 필경 갈등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에 틀림없는 것이겠지요. 부스럼 딱지가 크면 고름이 많이 나온다고 늘 말씀하시던 어머니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대체 뭘까? 저 싸움은.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언니가 걱정이 됐던지 전화를 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시댁과의 갈등 때문이랍니다. 봄만 되면 시댁 농사일 거드는 문제로 다툼이 있어 왔답니다. 아저씨는 무엇을 결정할 때 의논이 없이 불쑥 마음대로 한답니다. 그래서 속상할 때가 많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언니 입장을 다 말할 수가 없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결국에는 아저씨가 가끔 물건도 집어던진다고 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못 먹을 것이 없고 화가 나면 못할 소리가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데, 화가 나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냐만, 하지만 상대방이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이쯤 되면 상담가의 입장에서 민원해결사로 자세가 달라집니다. 빈도는 어떤지, 심해지는가 아니면 줄어드는가, 신체 폭력으로까지 이어 지는가 아닌가, 슬쩍슬쩍 자존심 상하지 않을 만큼으로 해서 묻습니다. 다행히 신체 폭력까지는 아니라고 합니다만 걱정이 많아집니다.

참 모를 일이지요. 그렇게 좋은 낯빛을 가진 아저씨가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다니 말입니다. 인심이 좋아 밥도 잘 사고 일도 잘 돕고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는 그야말로 팔방미남인데 겉보기와는 달리 그런 면이 있다 하니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쯤 되면 곧장 따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것 봐라, 그 좋은 사람이 그럴 때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인기라, 안봐도 뻔하지, 여자가 얼마나 제 멋대로이면 그러겠어?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랑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께서 한 말씀 거드십니다. “여자가 애살이 좀 없더라. 남자는 나무랄 데가 없더니만….” 시어머니 말씀이 곧 세상 사람들의 시각일 것입니다. 이른바 폭력유발론이겠지요. 폭력행위를 하는 쪽에는 관대한 반면 피해자를 폭력유발자라고 일컫고 그 사람에게는 싸늘한 시선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약자가 약자의 편에 서기란 쉽지가 않나 봅니다.

남의 집 가정사를 우리 부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기가 쉽지만은 않으나 해결법이 참 난처합니다. 그런데 또 보고도 모른 체 하자니 그것도 쉽지 않기는 매 일반입니다. 흔히 가정폭력은 노출시키라고 합니다. 부부의 문제라고 감추는 순간 가정 내에서의 폭력은 일상이 된다고들 합니다. 힘이 센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가하는 행위인 만큼 그 힘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겠지요. 그러니 잘 살기 위해서는 이웃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웃은 중재의 입장이 아니라 폭력만큼은 개선의 입장으로 접근해야 함이 옳을 것입니다. 가정폭력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인데 집안이라는 감춰진 공간에서는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안되니 누군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곳도 실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웃의 눈이 무서우니 은밀한 집안일은 말하지 않을 것이 뻔할 것이고, 농사철에 마음이 바빠지면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지요.

이런 얘기는 가까운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말하기가 쉽지 않고, 또 알더라도 개입하기는 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갈등을 해결하고 분노를 조절하는 문제도 사람살이의 한 과정인데 같이 풀어야 할 개인, 또는 사회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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