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뛰어든 농활] 닭과 계란과 나와 그 남자

  • 입력 2015.05.24 09:07
  • 수정 2015.05.24 09:2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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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 사진 한승호 기자]

▲ 본지 권순창 기자(왼쪽)가 지난 19일 충북 보은군에 위치한 가람뫼농장에서 계란을 수집한 뒤 농장주인 최생호씨와 함께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소름끼치도록 두려운 일이 있다. 아무리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더라도,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은 나에겐 정말 끔찍끔찍한 일이다. 내가 이 땅의 부지런한 농민들을 존경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오늘만은 끔찍한 일을 기꺼이 감수해야 했다. 모처럼 산란계농장의 일과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고, 또 매번 ‘기자가 뛰어든 농활’ 기획을 날로 먹고 있는 홍기원 기자에게 농활이란 이런 것이다,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충북 보은에 있는 가람뫼농장에 도착하니 6시30분이다. 농장의 하루는 이 때부터 시작한다. 바로 들통에 모이를 퍼 담고 양계장으로 들어가 닭들에게 부어 준다. 성질 급한 놈들이 그 새를 못 참고 손에 든 들통 위로 올라와 모이를 쫀다. 아랑곳 않고 들통을 기울이자 화들짝 튀어 내려가는 모습이 재미나다.

그런데 이 모이가 예사로운 게 아니다. 밀기울, 현미, 왕겨, 쌀겨, 석회, 황토, 전국에서 공수한 갖가지 재료를 가지고 이틀에 한 번 손수 배합한다. 모이를 100% 직접 만들어 급이하는 농장이란 축산담당기자로서도 처음이다.

▲ 새벽 6시30분, 권순창 기자가 모이통에 모이를 붓자 주변에 있던 닭들이 부리나케 모여든다.
“잘 먹어라~!” 농장의 관례(?)에 따라 닭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리도 아침밥을 먹는다. 식사 후엔 계란 포장지에 농장 라벨을 붙이는 시간. 일이 수월하면 말이 많아진다는 건 지난번 농활에서 경험한 바 있다. 자연스레 농장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가람뫼농장은 자연양계를 하는 유정란 농장이다. 수탉과 병아리를 포함해 1,300수의 닭이 있으며 하루 생산되는 계란은 600~700개에 불과하다. 이제는 입소문이 나 주문량이 생산량을 넘기도 하지만 농장주인 최생호(48)·한은숙(44)씨 부부는 지금 규모를 부부가 꾸려갈 수 있는 상한선으로 여기고 있다.

“규모가 이보다 커지면 계란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직접 모이를 주는 가장 큰 이유가 관찰하기 위해서거든요.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에 쳐박힌 녀석은 없는지, 잘 못먹으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잘 살피고 관리해 주면 또 금방 회복하고 그러죠.” 반려동물 대하듯 닭을 키우는 최생호씨. 이 남자, 참 멋지다.

▲ 오전 9시30분, 산란상자를 연 권 기자가 갓 낳은 계란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다.
9시30분. 계란을 1차로 수집하는 시간이다. 똑똑 노크를 하고 산란상자를 열어 보니 따끈따끈한 계란이 한가득이다. 줍고 줍고 또 줍고…. 보이는 건 다 주웠으되 암탉이 품고 있는 알이 문제다. 슬쩍 배 밑으로 손을 넣어 훔치기도 하고,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토닥토닥 쓱쓱 밀어내며 계란을 찾기도 한다. 바로 하나 호로록 까 먹은 따끈따끈한 날계란의 고소한 맛, 그거 한 번 기똥차다!

계란을 받았으니 닭에게 보답을 하는 게 도리다. 날이 바짝 선 낫을 들고서 간식으로 먹일 풀을 벤다. 고된 일은 아닌데, 낫질이 서투른 탓에 흐린 날씨에도 땀이 비 오듯 한다. 마침 지금이 일년에 한두 번 계분을 치우는 시기라기에 그 일도 도전이다. 그런데 나란 남자, 군대에서도 행정병을 맡은 탓에 삽질은 낫질보다 더 가관이다. 어설픈 삽질을 몇번 하다 최씨를 보고 서서 “제가 이래요” 멋쩍은 표정을 짓자, “그래도 농사일 절반이라는 낫질 삽질 다 해봤으니 할 건 다 한겁니다”라고 격려한다.

유기축산도, 무항생제 축산도 아닌 계분을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란다. 그러고 보니 냄새도 전혀 없고 거의 흙에 가깝다. 유기·무항생제 인증을 안 받는 이유는? “형식에 구애받는 인증보다 기르는 사람의 양심과 마음이 중요하고 고객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저희 계란은 고객들께서 인증해 주십니다.” 정말이지 난, 이 남자가 참 좋다.

수집한 계란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선별과 포장이다. 최씨가 소주를 꺼내 따르길래 ‘뭐 이런 걸 다’ 하며 입맛을 다셨지만 용도는 계란 세척. 파란을 골라내고 불순물이 묻었으면 소주로 살살 닦는다. 다음은 10개 단위로 포장을 하는데, 큰 것이 중앙으로, 작은 것이 가로 가야 배송할 때 잘 깨지지 않는단다. 내가 볼 땐 크기가 다 똑같은데 최씨는 귀신같이 잘도 고른다. 한두 개 포장하다 틀렸다고 지적을 받고, 숙련자의 솜씨를 멍하니 구경한다.

▲ 낮 12시, 권 기자가 오전에 수확해 포장한 계란상자에 산란일자 도장을 찍고 있다.
아내인 한은숙씨가 아침 일찍 출타하느라 오늘 일과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계란 선별작업은 아내가 전문가에요. 저보다 두 배는 빨라요. 아내가 한지 공예에도 재주가 좋은데, 가계수입의 중요한 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라는 두 가지 얘기는 꼭 넣어 주세요!” 애처가일까 공처가일까. 외로운 총각은 괜시리 오뉴월에 옆구리만 시리다.

포장을 마친 계란에 산란일자인 오늘 날짜가 찍힌 스탬프를 ‘꾹’ 찍는다. 유통경로는 전량이 직거래. 최씨 부부의 올곧은 신념을 알아 주는 건강한 소비자들에게 배송된단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오늘 계란엔 농장과 소비자에 대한 권 기자의 응원도 덤로 붙었다.

건강한 농부의 건강한 농사가 오래도록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기자들의 일정을 먼저 염려해 하루 일과를 반나절만에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최씨 부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농활’로 도움을 드린 게 아니라 ‘체험’으로 수고를 끼친 것 같아 송구스럽단 말씀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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