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21회

  • 입력 2015.05.23 14:48
  • 수정 2015.05.23 14:54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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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걷이가 끝나고 선택은 이성분과 혼례를 올렸다. 스물여섯 살이었고 이성분은 네 살 아래였다. 행랑채 방 하나를 신방으로 꾸민 초라하고 가난한 살림이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선택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농촌에는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농촌을 위해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친다고는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봄이 되면 장리 빚을 내야 했고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살림살이에 절망이 되기도 했다.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다. 선택도 진지하게 상경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결혼을 축하한다며 자리를 마련한 정해수에게 술을 얻어먹던 자리였다.

“주사 아재, 내가 사람 하나 소개해 줄 테니까 같이 좀 해볼 테여?”

▲ 일러스트 박홍규

주사는커녕 여전히 개척원인 선택에게 그는 꼭 주사라는 호칭을 붙였다. 물론 농협 내에서 이미 정직원 이상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에게 여러 편의를 보아주고는 있었지만 딱히 직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에게서 가끔 용돈을 받아쓰는 처지였고 그가 선택에게 일가붙이 이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까닭에 그가 하는 말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가 하는 제안이라면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인데요?”

“이제 결혼도 했고 하니 돈 쓸 일이 많아질 것 아녀? 뭐, 내가 대충 다 아니까 하는 말이지만 거 땅뙈기나 부치고 쥐꼬리만 한 월급 받아서 언제 셈이 펼 것이여? 그래서 내가 아재한테 돈 되는 일을 좀 엮어줄려고 그러는 것이여.”

선택이 저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부끄러움이 일어서 얼른 앞에 놓인 술잔을 털어 넣었다. 정해수가 말을 이었다.

“사실 돈 되는 일이란 게 장사 밖에 더 있나? 내가 아는 동생 하나가 도라꾸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갸를 좀 도와주면서 같이 해보라는 거지. 웬만하면 지금 받는 월급보다 훨씬 나을 것이여.”

따로 월급 이상의 수입이 생긴다면 살림이 금방 펼 테지만 장사라니, 언뜻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장사라니요? 제가 무슨 장사를 한다고.”

“아니, 아재보고 하라는 게 아니고 갸를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니까. 동업이라고 해도 되고. 아재는 지금처럼 그냥 농협에 다니면서 농사짓는 사람들이나 연결해주고 또 대출도 좀 융통해주고.”

무슨 소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사람이 무슨 장사를 하는데요?”

“갸가 하는 게 별 건 아니고 여게서 나는 것들을 모아다가 서울에 가져다가 되파는 일이여. 그러니께 철마다 나는 푸성귀도 좋고 곡식도 좋고 마늘이니 고구마니 등속도 가리지 않고 다 사다가 이문 좀 먹고 파는 것이지.”

그렇다면 농산물을 사고파는 장사꾼인 터였다. 속으로 실망이 되었다. 고작 그깟 장사를 하는 사람과 어울려서 무슨 떡고물이 떨어질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글쎄요. 우리 면만 해도 내다 팔만큼 짓는 농사가 무에 있어야지요. 그리고 그깟 농산물을 서울까지 운임들이고 다녀서 무슨 돈이 되나요?”

선택의 시큰둥한 반응에 정해수가 손사래를 쳤다.

“그게 그렇지가 않어. 가만 보니까 재미가 꽤 쏠쏠한 거 같더라고. 장날에 돈 사러 보따리에 이고지고 나오는 게 적은 게 아녀. 야가 이틀에 한 번 꼴로 도라꾸 몰고 서울로 가는데 제대로 아다리가 맞으면 돈 만 원 남기는 건 일도 아니랴.”

한 번에 돈 만원이 남는다는 말에 선택이 들었던 잔을 내려놓았다. 그건 엄청난 이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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