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민들 자존감 높이기는 온세상이

  • 입력 2015.05.17 22:44
  • 수정 2015.05.17 22:56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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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어장집 딸이셨던 시어머니께서는 제철 수산물을 즐기십니다. 때문에 마트보다 인근 5일장에서 주로 찬거리를 삽니다. 요즘에는 바지락이나 뽈락, 호래기가 맛난 철입니다. 식물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키우는 일에는 이제 이력이 좀 생겼지만 아직 생선을 보는 눈은 없어서 어떤게 좋은 물건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수산물을 고르시는 매와 같은 어머니의 눈은 언제나 배울 수 있을지 어렵기만 합니다.

그 많은 수산물의 특징과 맛난 철과 요리법과 그것을 싸게 파는 장꾼을 기억해내는 마법같은 능력에 감탄하며 바쁘지 않은 날에는 시어머니랑 같이 장에 갑니다.

장에 갈 때면 동네분들을 같이 태워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웃마을 분들도 함께 갈 때도 있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과 동승할 때면 비교적 젊은이가 농촌에 사는 모양새에 의아해 합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 선수를 치십니다. “이런 데 사람 아니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데 사람과 다른 데 사람의 차이는 뭘까? 그 답은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농사짓는 젊은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깔려 있다는 것을 어머니께서는 알고 계신 까닭입니다. 못해도 공무원이나 선생쯤은 돼야 내세울 만한 것이고, 대처에서 사업하다가 돈냥이나 벌었다는 소문쯤은 달고 다녀야 자랑스런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고생하는 처지를 너무도 잘 아는 농민이사 그 무엇이 귀하게 여겨지겠습니까.

농민에 대한 세상의 가치는 누가 매겨놓았는지 궁금해집니다. 경매장에서 경매사가 직업군에 따라 군인 얼마, 공무원 얼마, 학원강사 얼마, 사업가 얼마라고 시세를 갖다붙인 것도 아닐 터, 필경 사람들은 피부로 더 잘 알것입니다.

뼈 빠지게 농사지어도 제값은 커녕 생산비도 못 건지는 판국에 고생은 바가지로 하고, 계절따라 날씨따라 온갖 마음고생에다가 올해 농산물 가격 형성이 어떨지 노심초사하는 판국에 농민들 가치야 두 말 할 나위가 없는 셈입니다.

자존감은 어떻게 높아지는가? 저 혼자 잘났다고 의기양양하면 되는가? 아니랍니다. 자존감은 주변사람들의 칭찬과 지지에 의해 스스로의 격이 높아지는 법이라 하네요.

농민의 자존감도 다르지 않을 법합니다.

농업소득 보장, 농민복지 향상, 농작업 환경개선은 물론이고 식량생산과 환경보전, 문화전승자로서의 농민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사회환경 조성에 온나라가 지혜를 모은다면 가능할 법도 합니다.

시어머니께서 농사짓는 자식들이 못내 자랑스러워 5일장 가는 길의 이웃에게도 의기양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디가 못나 농사나 짓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므로 지레 선수치시며 이런데 사람 아니라고 치켜세울 일 없이 딱 잘라 “우리 애는 농사짓네”라고 말하시면 “하이고, 그런가? 자식농사 참 잘 지었네”라고 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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