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20회

  • 입력 2015.05.16 15:27
  • 수정 2015.05.16 15:4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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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결혼은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 읍내의 어느 처자와 혼담이 오고가다가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 첫눈에 낯설지가 않았다. 전에 보았을 리가 없건만 오래 알던 사람처럼 편한 인상이었다. 작은 키에 갸름한 얼굴을 한 처자는 한사코 고개를 숙이고 들지 못했다. 마주 보이는 머리의 뽀얀 가르마가 어딘지 정갈해 보였다. 묘숙처럼 눈에 띄는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현모양처라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다리를 놓은 매파가 자리를 뜨고 선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곱게 자라신 거 같은데 농사일 같은 건 해 보셨소?”

▲ 일러스트 박홍규

아무리 한 번 맞선에 그대로 이어지던지, 깨지던지 결판이 나는 만남이라도 다짜고짜 던지기에는 민망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이미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는지도 몰랐다. 그런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여자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처음 들어설 때 잠깐 목례를 했을 뿐 아직 여자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상태였다.

“아버님 살아계실 적에.”

모기소리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자가 겨우 대답을 했다. 얼굴과 어울리는 맑은 목소리였다.

“자당께서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위로 오라비 둘과 아래로 남동생을 둔 사남매 중 고명딸이라고 했다. 큰 오라비가 이미 삼십 대 중반이어서 아버지는 사년 전에 병사했고 어머니 또한 일 년쯤 전에 세상을 떴다고 했다. 지금은 읍내에서 엽연초 공장에 다니는 큰 오라비네 집에서 기식하고 있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나온 말이었다.

“예. 기세하신 지 일 년이 지났어요.”

역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짧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선택은 조금 놀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여자가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세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제야 한문 공부도 좀 했다는 매파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에게서 백수문과 명심보감을 떼었던 선택은 또래 중에서 한문 실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여자에 대한 호감이 더 짙어졌다. 처음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자 선택은 이성분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찬찬히 뜯어볼 여유가 생겼다. 애초에 이번 맞선자리를 어머니와 삼촌은 탐탁찮게 여겼다. 우선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떴다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녀와 외가 쪽으로 먼 친척이라는 매파가 한 번만 만나보라며 간곡하게 청했을 때도 두 사람은 왼고개를 쳤었다.

“뭐, 부모 잃은 거야 인력으로 안 되는 걸 어떡하겠어요? 게다가 다 장성해서 돌아가셨으니 고아로 큰 것도 아니고.”

제 혼사에 말을 보태는 게 겸연쩍은 일이긴 했지만 선택의 말 한 마디에 그럼 만나는 보자는 쪽으로 결정을 본 것이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 것일까,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상하기만 했다. 남자나 여자나 자신의 혼사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도 드물뿐더러 선택의 성격으로 보아 더욱 그러했다.

“들으셨겠지만 저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농토라고는 겨우 굶지 않을 정도이고 하는 일도 장래가 보장된 게 아닙니다. 잘 생각하시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꺼내놓고 보니 또 난감한 말이었다. 당장 데려오기라도 할 사람처럼 결정을 하라니, 여자가 듣기엔 당황스러웠는지 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말을 해놓고 보니 스스로의 처지가 각다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진 것 없고 장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 정말 이 여자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면 큰일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이 여자를 놓치기 싫다는 조바심이 다시 일어났다.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셨다는데……”

마침 여자가 묻자 선택은 속으로 기회다 싶었다.

“실은 뜻한 바 있어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남자가 태어나서 사회에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자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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