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샤워법으로 보는 남녀 차이 분석보고서

  • 입력 2015.05.10 18:20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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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여름이 오기 직전의 봄날, 한낮의 기온이 25도가 넘습니다. 이제 들일을 하고나면 먼지 뿐 아니라 땀까지 씻어내야 하는 계절입니다. 탕 속에 몸을 푹 담구는 전신욕이 아니어도 땀이 나도록 일한 후 샤워를 하게 되면 더없이 개운합니다. 그런데 남녀의 몸씻기는 시간과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산 그림자가 길어지도록 농사일을 하다보면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빠듯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한참은 바쁜데 여유롭게 몸을 씻기가 쉽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화장실로 들어섭니다. 샤워를 합니다. 샤워만 하느냐? 샤워하는데는 5분, 화장실 청소에 10분이 넘습니다. 간단한 샤워 후 욕조와 세면대 곳곳을 청소합니다. 타일 홈에 곰팡이 때라도 낄 새라 솔로 문지른다, 하수구 틈새에 낀 머리카락을 뺀다, 칫솔꽂이 등 안 보이는 곳까지 청소하느라 부산하기만 합니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집안 전체가 비위생적인 듯해서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게다가 언제나 물을 사용하는 곳이므로 곰팡이 때가 앉기도 쉽고 악취도 많이 나기 때문에 다른 곳 청소보다 바지런을 떨어야합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윤기가 나도록 청소를 잘 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만.

남편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씻고 나면 곧장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매우 열심히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문을 열고 나옵니다. “뭔 냄새고? 오늘 저녁은 잡채? 맛나겠소!”

‘암요, 나도 농사일하고 집에 돌아와 몸만 씻은 후, 머리카락을 저녁바람결에 가볍게 말리며 누군가가 어제와 다른 요리를 해주는 것 먹으면 기똥차게 맛나겠소!’

남녀의 샤워시간은 비슷하지만 청소까지 하고 나오는 시간과 몸만 씻고 나오는 시간이 얼추 비슷합니다. 시간 뿐아니라 여유에서 곱절은 차이가 느껴집니다. 우리 집만 그런가 싶어 친구들에게 얘기를 꺼내보니 대부분 사정이 비슷비슷합니다. 개인차를 뛰어넘는 그것은 무엇?

나만 유독 쾌적한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글쎄요. 아마도 위생과 정돈의 책임이 나에게 전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안일은 하면 표가 나지 않고 하지 않으면 표가 납니다. 또 일의 대가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그 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가 맺어지는 일이 없이 오롯이 개인적인 영역으로만 끝납니다. 그러니 집안일을 서로 좋아서 하려고 하지는 않는 모양새입니다. 솔직히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내 책임?

만약 분업이 확실히 이루어져서 전적으로 아내가 가사노동을 담당한다고 해도 가사일 자체가 재미없고 부담스럽기는 매일반입니다. 그러니 집안일은 남녀가 나눠서 하는 것이 옳다고 세상은 말하는데 현실은? 멀고도 요원한 일입니다. 겨우 설거지, 빨래를 널고 걷는 정도의 역할 분담으로 많은 일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에 갈 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텃밭에서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식재료로 매번 다른 요리로 식구들의 입맛을 돋우는 일이나, 계절에 맞는 옷이며 이불을 마련하는 일, 봄날 노란 소나무 꽃가루가 천지를 뒤덮어도 그때그때 청소 해내는 노련함 속에는 사랑이란 이름의 관습이 몸에 배이고 또 배어 있습니다.

아내이기 때문에, 며느리이기 때문에, 누나이기 때문에, 여동생이기 때문에 당연히 집안일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서서히 지나가는데, 농촌에는 아직도 집안일은 여성들만의 몫입니다. 도시에서 잘 하던 사람도 귀촌을 하면 중늙은이 마냥 가사일로부터 멀어집니다. 좀 배운 젊은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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