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TPP와 쌀

  • 입력 2015.05.08 10:38
  • 수정 2015.05.08 11:33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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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 한신대학교 교수

TPP 협상이 막바지로 가면서 점차 미-일간에 협상의 최후 걸림돌이 부각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쌀, 쇠고기 및 돼지고기, 설탕, 유제품, 밀 5개 농산 품목이 그것이다. 일찍이 일본정부는 TPP 참여시 쌀의 90%, 밀의 99%, 설탕 100%, 버터와 분유 100%, 쇠고기 75%만 살아남게 될 거라 추산한 바 있다. 그래서 그 결과 일본의 식량자급률(열량 기준)이 현 39%에서 13%로, 농지는 60%가 감소될 거라 한다. 지금 이런 추정치는 일본 정부의 자료를 놓고 하는 얘기다.

일본 측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최후저지선 그래서 ‘성역’이라 여겨지는 것 중에도 쌀은 으뜸이다. 일본에 있어 쌀은 지금까지 그저 교역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식량자급률 등의 경제 지표를 넘어 하나의 민족적 상징이었다. 사회통합 곧 집권당의 의지가 민중과 함께 한다는 정표였다. 그러니 만큼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그래서 이방인 곧 미국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경제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곧 쌀에 관한 한 일본은 지금까지 이를 양보하고 안하고 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민족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받아 들였다고 본다. 우리에게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주식인 쌀의 힘은 그만큼 지대하고 그래서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이제 그 철옹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농산품 그 중 성역으로 여겨지는 5대 품목에 대해서만 보자.

먼저 쌀에 대해 미국은 별도의 MMA증량을 요구했다. 현재 77만톤인 일본의 MMA물량을 대폭 늘려 20만톤을 요구했다. 그리고 쇠고기에 대한 관세도 대폭 인하할 것을 요구했고, 돼지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유제품에 대해서도 관세를 대폭 인하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의무수입물량 즉 MMA를 할당하라는 말이다.

오늘 이 시점에서 TPP를 둘러 싼 미-일간의 협상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올해 들어 513% 고율관세로 개방한 우리 쌀 산업과 시장이 어찌될 건가 하는 데 있다. 한국 정부는 TPP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 관점에서 보자면 FTA 협정을 체결하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순응해 온 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FTA협정과는 달리 TPP는 통상적인 협상을 통해 이를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협상국 12개국이 합의, 종결한 그 결과를 놓고 그저 예스, 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만에 하나 TPP협상이 지금처럼 마무리된다면 우리 정부가 할 일은 없다. 그저 12개국 대표들과 만나 이들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을 건지 말 건지를 그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을 비롯한 TPP 12개국과의 협상을 우려했을 때, 정부 측의 답변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양허제외”. 그렇다. 이미 513% 고율관세 개방을 했기 때문에 양허제외 즉 개방을 하지 않게 되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 양허 제외는 우리 생각일 뿐이다. 협상의 상대국 곧 TPP 12개국이 이른바 ‘가입’의 조건으로 쌀시장 추가개방을 요구하면 그저 응하거나 이에 따른 협상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우리는 전형적인 ‘을’의 위치에 서 있다. 양허제외를 되풀이 하는 정부의 입장은 전혀 대안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가장 큰 시사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뜩이나 40만톤의 MMA물량을 영구적으로 짊어 져야 하는 우리 쌀 산업에, 그리고 그 이유를 들어 관세화 개방을 강요당한 우리 농민에게 이제 TPP 때문에 MMA증량을 받아야 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특히 미-일 TPP 막판 협상은 일본의 5대 농산품 그 중 쌀 대 미국의 자동차 수입관세의 싸움이다. 어떤 형태로든 일본이 대미 MMA를 증량시켜줄 것이라고 할 때, 미국 측 역시 자동차 수입관세에서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막판까지 버틸 수 있는 것도 미국의 자동차관세라는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 카드 자체가 한미 FTA를 통해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저 미국의 추가적인 요구를 수용할 건지 여부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의 협상지위는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TPP, 전면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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