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저농약 인증제, 도입부터 폐지까지

  • 입력 2015.05.03 11:35
  • 수정 2015.05.03 11:50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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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업은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중요한 대안으로 주목받아왔다. 농민 스스로의 고민과 함께 소비자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는 친환경농업육성정책을 수립했다. 정부는 농가들의 친환경농업 진입과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인증제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저농약 인증제’는 유기농업의 기반이 미미했던 당시 농업 구조 속에서 농가의 유기농 진입장벽을 낮춰 친환경농업의 양적성장을 주도했다. 2009년에는 저농약이 친환경농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저농약이 진짜 친환경농업인가하는 의문이 발생했다. 2010년 정부는 친환경농업의 질적 성장을 견인하도록 저농약 폐지를 결정했다. 단, 단기간에 유기전환이 어려운 과수 농가들을 고려해 2015년까지 저농약 폐지를 유예하기로 했다. 폐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저농약 농가들은 무농약이냐, 관행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친환경농업 육성, 친환경‘인증’제의 시작

국내 최초의 농식품 인증은 1992년 시행된 농산물 품질 관리 인증이다. 농산물 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수입농산물에 대비한 국내 농가의 대외경쟁력 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산물 우수관리 인증 등 다양한 인증제도가 도입되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이후 소비자들의 안전한 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인증 제도 도입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품질이 우수하고 안전성이 확보된 농식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또 농민들도 지속가능한 농업의 대안으로 시작한 유기농운동이 맞물리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는 소득을 증대하고, 환경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2001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을 제정해 본격적으로 친환경농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정부는 친환경농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친환경농산물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개설했다. 인증제는 전문인증기관이 농장시스템을 종합 점검해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농산물임을 보증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친환경농업 인증제를 유기, 전환기 유기, 무농약, 저농약의 4단계로 구성했다.

저농약 인증제는 우리나라만이 보유한 제도다. 친환경농산물은 생산방법과 사용자재에 따라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 농산물로 분류하는데, 그 중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관행농업의 2분의 1이하로 줄여 재배한 것을 저농약 농산물이라고 부른다.

저농약 인증제를 도입한 까닭은 관행농업이 대부분이었던 국내 농업 구조 속에서 친환경농업의 체계적 육성을 위해선 저농약에서 시작해 유기농으로 단계적 발전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와 집중 호우 등 기상재해가 심한 기후적 조건에서 단기간에 유기농으로 전환하기도 어려웠다. 또 유기농업 자재와 기술 등 인프라 구축이 미흡해 초기부터 화학비료, 합성농약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저농약 인증제는 농가가 단계적으로 무농약 및 유기농으로 진입을 돕는 한시적인 방안이었던 셈이다.

저농약 농산물의 ‘과잉’ 성장 … 저농약인증제 폐지

정부의 육성정책 아래 친환경농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가는 빠르게 늘어났다. 친환경농산물은 인증제 도입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2009년 친환경 농가는 약 20만 농가로 그 정점을 찍었다. 친환경농산물 면적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9년 20만1,688ha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은 농산물을 살펴보면 전체 친환경 농산물 중 60%가 저농약 농산물이었다. 유기농으로 진입하기 위한 전 단계 중 하나였던 저농약농산물이 더 이상 유기농으로 도약하지 않고 친환경농산물이란 이름으로 정체하고 만 것이다.

저농약농산물은 ‘저농약농산물’이란 용어 자체가 농약이 사용된 농산물을 표방하고 있어 태생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선 유기농이 아닌 셈이다. 관행농업의 2분의 1이하 사용이란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이는 소비자에게 유기농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키고 혼란을 유발한다.

2005년 정부는 친환경농산물이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저농약 인증제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은 저농약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인증제도 통합을 결정했다. 국제 기준에 맞게 인증제도를 개선하되 친환경인증 중 무농약인증은 친환경농업육성 및 유기농업인증의 활성화를 위해 놔두고 저농약 인증제는 2010년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과실 농가는 다년생작물로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온과 병해충방제, 기술부족 등으로 무농약 이상의 친환경 재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과실류에 대한 무농약·유기 재배 기술개발 및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저농약 인증이 폐지될 경우 과수 농가가 친환경 농업을 포기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이에 따라 과실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2010년부터 신규인증만 중단하고, 기존 저농약 농가의 경우 인증의 유효기간을 2015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친환경농업육성법이 개정됐다.

관행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유기농을 지속할 것인가?

친환경농산물의 인증 농가 수, 인증량, 면적은 2009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저농약 농가는 2010년 저농약 신규 인증 중단과 맞물려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저농약은 무농약과 유기농으로 가는 중간 단계인 만큼, 저농약 농가는 2009년 이후 신규 저농약 농산물 인증이 중단되면서 지속적인 감소를 보이고 있다. 2009년까지 11만9,004호로 급격하게 증가하다가 2011년 5만7,487호로 농가수가 반토막이 나면서 저농약 농가 수는 무농약 농가수보다 더 적어지게 됐다.

저농약 농가는 2009년 12만6,000농가에서 2010년 9만 농가, 2011년 5만7,000농가, 2012년 3만7,000농가, 2013년 2만3,000농가로 꾸준히 감소해 전년대비 40%가 줄었다.

특히 저농약 재배면적은 2008년을 정점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는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36%씩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규 인증 중단으로 저농약 농가의 유입은 중단되고, 기존의 저농약 농가들은 유기·무농약으로 전환하거나 관행농업으로 다시 돌아간 탓에 이 같은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친환경 농가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미루어 봤을 때 저농약 폐지 결정 이후 저농약 인증 농가 중 다수가 상위 인증단계보다는 관행농업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농가들의 인식도 유기 전환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013년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저농약 인증제가 폐지되면 유기 무농약으로 전환하겠다는 농가는 36.4%에 그쳤다. 특히 70%가 저농약 인증인 친환경 과수농가를 조사한 결과, 향후 유기와 무농약으로 전환할 의향을 가진 농가는 17%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저농약 농가가 상위단계 친환경농업으로 전환을 꺼려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술적 어려움과 소득감소로 나타났다. 품목 간 재배 난이도 및 생산비 차이가 크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농약 농가 중 관행농업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이유로 조사대상 농가 중 70% 이상이 유기나 무농약 등의 친환경농법 실천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또 과실류 농가의 33.3%는 판매에 큰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저농약 인증제 폐지 이후 저농약 과수 농가들의 경우 무농약, 유기재배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거나 촉진하는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아쉽게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은 보이지 않았다.

저농약 과수인증 농가가 관행으로 돌아가지 않고 무농약·유기 농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농약과 유기재배로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기술과 대책 보급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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